“본 건물은 공사비 미지급으로, 유치권 및 점유행사 중이므로 유치권자 허가 없이 출입을 금하며, 이를 어길시 민·형사상으로 고발 조치합니다. -견문창호(주) 010-3671-2xx7-” 봉서사(태고종) 건물 서재에 내걸린 펼침막 글이다.
2020년 2월 16일 오랫동안 치러오던 전주시내 ○성교회 갈등이 찜찜하게나마 마무리 되는 날이기에 이것저것 잊으려고 첫눈을 보기 겸 봉서골을 찾았다.
저수지에 비치는 나목이나 잘 포장된 길바닥, 조용한 서방산 그늘,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의 정취가 그럴 듯하여 ‘잘 왔구나!’ 이런 감탄은 잠깐이었고, 절 마당에 들어서니 앗! 위의 안내문이 눈에 띈다.
놀랄 수밖에 없는 건 최근 들어 불교나 기독교가 왜 이 지경인가 이게 의문이다. 자세한 연유 알 필요도 없지만 물어볼 사람 역시 보이지 않는다.
다만 흰 개 두 마리가 짖지 않고 꼬리를 살살 흔들며 반길 뿐이다. 불도, 보살, 스님이 얼마나 그리우면 이럴까 귀여우면서도 측은하기 짝이 없다.
이럴수록 산사는 더 쓸쓸해 보이며 불교의 쇠락이냐? 농촌 피폐 탓이냐? 경제 파탄이냐? 한없는 추측을 해본다.
기독교·천주교 교세 번창(?)으로 시주야 줄어들 수 있지만 설날 찾아간 경천 화암사와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2019년 가을 논산시 관촉사나, 가끔 들리는 아늑한 송광사와 사뭇 다르다. 1월 1일 들린 동상면 연석사 문 잠겨 있었으나 ‘그러려니’하고 갔기에 봉서사에서의 충격과는 전연 달랐다.
봉서사 6·25 전란 중 불에 탄 후유증인가. 재건이야 됐지만 공사비조차 못 갚을 정도라면 심각한 문제이다. 펼침막을 통하여 속사정이 온 세상에 알러졌다.
△서기 727년(성덕왕 26) 창건이라는데 그 역사 1,293년. △고려 공민왕 때와 △조선 17세기 진묵대사(1563~1633)가 중창이라니 역사 깊은 절이며, 전국승려대조사(全國僧侶大祖寺)로 추앙받는다는데 이런 현실이다.
주련 글씨 이 해석이 궁금하나 혹 ‘흰옷차림 관음보살 기뻐하실 말씀 없으시다’ 이게 맞다면, 말 대신 실천의 어머니로서 존경심이 더해진다.
김천 직지사·안동 봉정사는 건전한 걸로 보인다. 김제 금산사 새 건축물 놀라지 않는 사람 없으며, 전북혁신도시에 정사도 세웠다. 봉서는 봉황 산다는 곳이라는데 봉황이 떠났다는 말인가?
익산 미륵사지는 점차 예전 모습을 찾아가는데. 전북 유형문화재 제108호 진묵대사 부도(浮屠)는 쓸쓸해 보인다. 서울 길상사는 공덕주 김영한 보살이 일으켰다.
봉서사에 원불교 홍나희(법호 도타원, 법명 도전/ 삼성 이재용 어머니) 여사 같은 분이 나서야 될 것 같다. 도량의 기능이 어서 회복되기 바란다. 전주 서고사는 큰 집을 짓고 있다. 봉서사 수호 방안이 무얼까?
/이승철=칼럼니스트/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한국국학진흥원 자문위원회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