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렇겠지만 달력 보는 재미가 있다. 연말·정초 새 달력을 받으면 우선 노는 날이 며칠인가 세어보기부터 했는데 지금은 365일 날마다 놀며 집안 기일·시제·생일을 써 넣는 정도이다.
달력을 넘기다 보니 음력 3월 9일(양력 4월 1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날이다. 아! 슬프도다. 전주(봉동읍 구만리)에 사시던 회안대군께서 조카 세종대왕의 부름을 받고 내키지 않는 길 부득이 나섰는데 서기1420년 3월 9일 은진에서 서세하셨다.
아버지가 개국한지 29년이던 해 『조선왕조실록』과 『망우당행록(忘牛堂行錄)』에 자세하다. △성은 전주이씨요 △태조 이성계의 제4남 △이름은 방간(芳幹:1364∼1420 수 57)으로 △호는 망우당 △품계(品階)는 현록대부(顯祿大夫) △사우는 봉동 구만리의 봉강사(鳳岡祠)이며 △부조묘(不 廟)는 충남 서산 부석면 강당리 동산정에 있고 △금상동 법사산 묘는 전주에서 가깝다.
△배위는 여흥민씨→밀양황씨→김포금씨(金浦琴氏) 3위로 후손이 수십만인 왕손이로되 조선 519년 동안 애증(愛憎)이 남다른 왕족이다.
특히 완주·전주에 회안대군 후손이 많아 누구에게 물어봐도 좋지만, 더 깊이 알려면 『망우당행록 「국역사업 회안대군의 삶과 자취(2017 완주군)」』을 보기 바란다. 3부부인(府夫人)과 장남이 먼저 갔으니 끔직한 삶이었다.
신도비와 둘째 아들 창녕군(昌寧君) 태(泰)의 가장(家狀:집안 문서)에 서 대군의 말씀 “애들아! 니들은 한수를 다시는 건너지 마라(不復渡漢水:불부도한수)”. 오직 했으면 이러셨을까? 이 유훈 따라 대군 후손은 이 지역에 머물러 대성을 이루었다.
여기 ‘한수(漢水)’를 ①수도권 한강이냐? ②완주의 젖줄 한내(漢川:한천/만경강)냐? 두 가지 풀이가 가능한데 회안대군의 정세 판단으로 보아 “이 고장 ‘한내’를 건너지마라.” 이게 틀림없을 것이다. 마그내-막은내… 이는 ‘막근천(莫近川)’으로 보인다.
『조선왕조실록』를 보면 전주 귀양살이 중 천렵(川獵)도 금했다. 냇가 근접을 막았다는 말이니 만경강 근처를 못나가게 했다는 말로 글과 일치한다.
이처럼 서럽게 사시다 상경 길 그날 밤에 객사라니 후손들은 이 여한을 참고 견디며 조선 500년을 살았다.
그 동안 여러 씨족은 회안대군 자손과 혼인을 했으니 외가요 처가·고모·이모네 집안이다.
우리 민족 뭉치는 힘이 세계에서 으뜸이라 서세 600주년 추모행사 장엄하게 하기를 바랐는데 한 맺힌 어르신이라 그런지 코로나-19(폐렴)로 봉강사 춘향도 서세 추모회도 열지 못한다.
음력 3월 9일 서산 부조묘 향사 주최측 초청이나 자진 참여가 쉽지 않게 보인다. ‘아! 슬프도다. 양희공(良僖公)이시여, 마전 양후공(良厚公) 후손 이승철 삼가 북향 사배(四拜)하나이다.’ 이홍기 전 회장·이준봉 선생과 임원의 호의에 늘 감사한다.
/이승철=칼럼니스트/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한국국학진흥원 자문위원회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