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 12년 동창생이 20년 만에 외국에서 돌아와 만나니 무척 반가웠다.
3일 동안 맛있는 음식 먹고 마시며 즐기다 헤어지는 날 새벽. 친구하는 말 “야! 너 여태까지 뭘 해 놓았느냐?” 물어댄다.
△왜 서울대 가지 않았냐? △고장 너른 땅 왜 사지 않았나? △부잣집 딸에게 장가들지 못했나? △아들 왜 외국유학 시키지 않았나? △강남에 집 한 채 없다니! △세 아들이라며 도의원 하나 못 시키고? △돈 주면 다되는 교감·교장 왜 못 땄느냐? △고분 고분하는 자치단체장 하나 못 길렀니? △귀 어둡다며 보청기 안 끼는 이유? △장애인도 하는 자동차 운전 않는 까닭? △평생 부인 허리 하나 못 고쳐주다니! △글 10년 이상 쓰면서 원고료 한 푼 못 받고…
너 부자냐? 바보냐? 어떻게 이리도 잘 아는지 어안이 벙벙한데 한 마디 끼어들 말이 없다. 다 옳은 말로 이제는 어찌 할 재간이나 도리가 없다.
마침 2020년 4월 15일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려는 제자 ○○○ 경제인이 찾아왔다. 대화 중 요즈음 친구한테 들은 얘기를 대충하니 그 제자 깔깔깔 웃으며 “선생님! 중학교 때 ‘용서하라’ 하시지 않으셨어요?”, “그랬던가?”
제자의 말 “친한 사람한테 큰 돈 사기 당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질문에 선생님은 ‘용서하라’ 하셨습니다.” 이때서야 그 당시의 생각이 좀 떠올랐다.
제자의 말 “선생님 말씀 듣고 신학대학에 가려다 경제 공부하여 이 자리에 있습니다.”, “선생님! 생각나는 말씀 또 하나 있습니다.”, “무어간디?”, “행복은 늘 작고 단순한 속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나니 천하가 다 내 것 같이 느껴진다. 온갖 잡념이 제자 두 마디에서 날아갔다. 보내줘야 할 시간 “왜 국회의원 되려 하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생 자격시험 제도완화’와 ‘균형 잡힌 사회건설’이라고 명쾌하게 대답한다.
지당하고 구체적이기에 가르친 보람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세상 살다보니 잃은 것 누구나 많다. 그 걸 후회하면 병이 된다. 대화할 벗 많이 갔다.
중요한 이야기 한 마디를 빼 놓았다. 동창생이 수표 한 장을 주며 하는 말 “백지 수표일세. 액수는 자네가 써서 쓰게나.” 얼른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친구 물끄러미 바라본다. 평생 처음 보는 모습일 것이다. 속으로 “세상에 돈 싫어하는 놈 어디 있겠나! 사람은 다 똑같은 것들이지!” 마침 이런 생각을 할 때 수표를 꺼내어 들고 “나 죽거들랑 내 비문 자네가 쓰소. 이 돈은 그 비문 값일세.”
그 친구 수표를 받으며 “허허허허! 나 죽으려 해도 자네 때문에 못 죽겠네.” 하늘에 미세 먼지가 없다. 늙은 친구와 젊은 제자가 있어 코로나-19(폐렴)도 두렵지 않다. 친구의 말 ‘119 구급차 오거들랑 내외 분 타고나 오소.’
/이승철=칼럼니스트/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한국국학진흥원 자문위원회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