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2년간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문화유산의 보고다.
또 예스러움과 모던함이 조화된 ‘황리단길’은 요즘 경주를 찾는 최신 트렌드다.
다가오는 봄, 사부작사부작 경주를 더욱 기분 좋고 맛있게 즐기는 방법, 를 소개한다.
#1.함부로 붙일 수 없는 법주(法酒)라는 이름 = 법주는 종묘제사 등 국가 의례에 쓰이기 위해 빚었던 관용주로, 일정한 방식에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에 법주라 하였다.
아울러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시대는 사찰에서 술을 빚거나 판매하는 등 사원경제가 활발하였는데, 오랜 양조경험이 축적된 양질의 사찰주에 법주라는 명칭을 쓰기도 하였다.
#2.왕실 비법이 전해진 법주, 로컬을 담다 = 경주 최 씨 집안에 법주를 빚는 비법이 전해진 것은 조선 숙종 때다.
당시 왕과 왕실의 식재료 조달과 요리를 총괄했던 사옹원 참봉이었던 최국선(1631~ 1682)이 고향 경주에 돌아와 집안 대소사와 손님 접대에 쓰일 술을 빚었다.
이후 교동에 자리 잡은 최 씨 집안 맏며느리들에게만 전수되어 온 술 빚는 비법이 ‘경주교동법주’의 내력이다.
#3.술맛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썰, 3백년을 이어온 노블레스 오블리주 = ‘경주교동법주’는 노랗고 투명한 미황색을 띠며, 찹쌀 특유의 달짝지근하고 찐득한 맛이 특징이다.
게다가 알코올도수(16°)가 그다지 높지 않아 반주로 걸치고 나면 경주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질 것이다. 단 과하지 않고 뚜벅이 여행일 경우에만 말이다.
한편 이 술이 더욱 맛있는 까닭은 경주 최 부잣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빚어낸 명가명주(名家名酒)이기 때문이다.
이를 보면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멀리하여 정쟁에 휘말리지 말 것 ▲만석(쌀 2만 가마니)이상의 재산은 모두 사회에 환원할 것 ▲흉년에는 땅을 늘리지 말고 사방 백리 안에 굶주린 사람이 없게 할 것 ▲시집 온 며느리는 3년간 무명옷을 입을 것 ▲찾아오는 손님을 귀천 없이 후하게 대접할 것 등이다.
이러한 나눔과 배려는 경주 최 부자댁이 12대에 걸쳐 300년간 만석부(萬石富)를 누리는 기틀이 되었다.
또 일제 강점기 때는 임시정부의 든든한 자금줄이었으며, 광복 후 남은 재산을 털어 대구대를 설립하는 등 모든 부(富)를 사회에 환원하였다.
‘경주교동법주’ 한 잔에 담긴 이 가문의 이야기는 2010년 KBS 드라마 ‘명가’로 방영될 만큼 유일무이한 업적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4.여름에는 맛볼 수 없는 생주(生酒) = 경주교동법주는 사계절 내내 수량과 수온이 일정하고, 맛 좋은 집 안 재래식 우물물로 빚는다.
여기에 전통적인 법식대로,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만, 인간문화재의 정성을 담아 손수 빚기 때문에 생산량이 많지 않고 유통기한 또한 짧다.
국주(國酒), 즉 나라를 대표하는 전통주로 불리는 남다른 품격이 있는 것이다.
이쯤 읽었으면 “경주교동법주는 무슨 맛일까?” 호기심이 저절로 들 것이다.
주말, 훌쩍 떠나 경주를 느끼고 법주를 맛보자. 단언컨대 여행의 즐거움은 좋은 사람, 맛있는 음식, 그리고 ‘술술 넘어가는 한 잔 술’이다.
/ 나상형=술테마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