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기도 어렵지만 맡기기 쉽지 않다. △2015년(?) 전북 완주군 화산면 운곡리 돈의동 정경부인 양천허씨(1358∼1433) 묘를 이장하려고 파니 580여 년 전 함께 묻었던 고려 말 조선 초 그릇과 수저 등 10여 점이 나왔다.
이를 정성껏 거둬 보관중인데 근래 종중에서 관리의 어려움도 있고 또한 여러 사람이 함께 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넘겨주고(맡기고) 싶으나 막상 마땅한 기관을 찾지 못해 걱정이란다.
△2019년 11월 21일 우주황씨 집안 초청을 받고 군산시 ○○마을 □모재(□慕齋)에 가니 1729년 족보 초간본을 찍어낸 판목(가로 30×세로 52cm) 9점이 있다. 판 앞뒤에 음각·양각 글씨 크기와 단(段)의 배열이 정교하며 명필 해서 한 자 한 자 망가진 글자 없이 보관 상태가 좋다. 가치를 인정, 수장고에 넣지 않고 상설할 것을 약속한다면 협의해보겠다고 한다.
△『사가재집(四佳齋集:서거정 책과 다름)』과 『병사 죽봉황공유적서(兵使竹峯黃公遺蹟書)』는 문학·역사·서지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책이다. 어느 문화단체나 학계에서 번역해 낼만한 책이다.
△『조실왕조실록 지리지(고산현 편)』 기사 “…철장(鐵場)이 1이요【현의 북쪽 번북동(番北洞)에 있는데, 연철(煉鐵)·정철(正鐵) 7백 4근 12냥쭝을 군기감(軍器監)에 바친다】, 도기소(陶器所)가 1이요【현의 남쪽 진서동(秦西洞)에 있다】”에서 철장으로 보이는 곳을 아는데 이 정보 누구에게 줄까?
△고산면 소향리에 운암사(雲岩寺)가 있었고 18세기 구치용은 “손님 서봉에서 이르니(客自西峰至)/ 스님 대사리문 열어 맞아주네(僧開竹戶迎)/ 한 동이 술 마시는 사이 달 산에 지는데(一罇山月下)/ 뜰 안 가득한 국화는 서리 맞아 황량하구나(霜菊滿荒庭)” 바로 이 자리를 묻는 이가 없다. 여기 있던 돌부처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있다.
△과년 찬 딸(손녀) 줄만한 사람 귀하고, 잘 가르쳐 직장 좋아도 중매 나서는 사람 드물다.
△2020년 4월 15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귀중한 한 표를 누구에게 줄까 망설이는 완주군민이 많다.
△한문 초서 간찰[편지] 수 백 통(通)을 지니고 있는 전주시내 유○○씨는 넘겨주고 싶으나 마땅한 학자가 없다고 하자, 부인은 ‘어서 팔아 버려라’고 한다.
△5층 새 건물에 신도 1,931인이 새 목사를 찾는다.
△2년 후 뽑혀 새 교육감이 되려면 교육철학이 확실해야 한다. 600년 전 ‘여아배설(與兒輩說)’·‘여제생설(與諸生說)’ 이 글 먼저 보는 사람이 당선될 수 있다.
약 하려면 개똥도 귀한 법이다. 김용범 군은 어느 회사 오너가 다섯 번이나 바뀌었어도 건재하단다. 이유는 성실성 때문이다.
완주에서 정이 가는 기관 어딘가? 황씨 종중은 ‘군청에 청원한 두 가지 민원 처리’결과를 기다린다. 민원(民願)이 혹 ‘민원(民怨)’ 되면 아니 되지!
/이승철=칼럼니스트/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한국국학진흥원 자문위원회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