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범수! 하면 ‘다리군수’ 이 말이 먼저 떠오른다. 이서면 남계리 출신으로 처음 호는 남계(南溪).
군수시절부터 큰 꿈이 있었음을 이제 알겠다. 시골 교사 집에 찾아왔고 그 후 부인이 다녀가기도 했다.
유범수는 어떤 인물이었던가.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동창회장 △미국무성 초청 미국시찰 △특별 국정감사 위원 △제7대 국회의원(내무·예산위원) △원광대학교 동창회장 △정읍·완주·고창군수 △재향군인회 도지회장 △원호처 전주지청장 △육군중령 예편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수료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육군대학 졸업 ▲미국 육군포병학교 졸업 ▲육군사관학교 졸업
▲완주에서 국회의원 세 번(41·46·54세) 출마 두 번은 낙선이다. 46세 땐 무소속, 54세 때는 한국국민당 당적을 가지고 나왔다.
이 무렵 호 승당(丞堂) 붓글씨 몇 점과 여러 해에 걸쳐 보낸 친필 편지 30통이 있는데 누군가 원하면 보여주고 싶다.
소양면 황운리에 유범수 공적비가 있고 유지들이 하는 말 ‘그때 세우기 잘 했다’며 더 좋은 자리로 옮겨 여러 사람이 편하게 보도록 하고 싶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이서면 남계리 유항검 유적지를 찾는데 이 자리가 바로 유범수 씨 생시 집이다.
고창군수 시절 술 마시며 이야기하려면 광주로 갔다. 고창이나 전주에 나서면 아는 사람 눈에 뜨이나 광주에서 ‘고창군수 누가 알겠냐.’며 지혜롭게 처신을 했다.
거물 최영두 현역 국회의원을 제치고 민주공화당 공천을 받아 제4 완주군 지역구에서 41세에 당선(7대) 됐다. 시골 교사를 찾아온 열정 이 정도면 사람 관리에 능숙했음이 확실하다.
1969년 운주국민학교에 들리니 유범수 국회의원 여기 왔다고 한다.
인사 겸 찾아들어가니 개회 직전 실내에 청중이 가득했고, 마침 앞에 있어 가까이 다가서자 대뜸 하는 말이 “운주에서 이 선생 표가 내 표보다 더 많다면서…” 나도 놀라고, 주변 사람도 놀랐으며 서로 껄껄껄 웃어댔던 멋진 장면이 평생 잊어지지 않는다.
2020년 4월 15일 누가 단선될지 모르나 초대 이석주 제헌의원부터 20대 현역 의원까지 여러 이름을 기억하는 가운데, 고 최영두 전 의원의 딸(최○광)이 어쩌다 가끔 전화를 한다.
전엔 의원과 손 편지 오갔으며 친필 휘호도 보냈는데 지금은 전자문자가 소통의 전부로 보인다.
유범수 의원이 장성들 골프 치는 걸 지적했다가 집중 항의를 받았던 일이 떠오른다. 지금은 완주-진안-무주-장수 너른 지역 관리 심히 어렵고, 국회의원 대하는 애정도 옛날만 못한 편이다.
달걀 한 꾸러미 들고 국회의원 문병 가던 시절이 있었다. 김태식 전 국회부의장은 어디 사나. 자서전 『정치 아리랑』이 보고 싶다. 오는 봄 4월 15일 어느 군 사람이 당선일까?
/이승철=칼럼니스트/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한국국학진흥원 자문위원회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