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 할아버지 잘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욕 퍼붓게 하는 사람이 있다. 삼례읍 유리마을 유일수 씨는 할아버님을 더욱 존경스럽게 한다. 가을 어느 날 점잖은 자리에서 『우루재창화편 하(愚陋齋唱和編 下:복사본)』 한 권을 준다. 대단한 집안임을 다시 깨달았다. 삼례 유리(柳里) 우루재 유병양(柳秉養) 선생과 사연 깊은 책으로, 별암(鼈巖) 유지강(柳之綱) 7대조 소개도 후손 덕이며, 유일수 씨는 책을 줌으로써 유병양 선생을 더 한층 드높였다. 열여섯 살에 아버님 돌아가셨고, 형은 그 먼저 죽어 집안에 일할 사람이 없는 쌍 과부댁이다. 남편 된 도리로 열심히 일을 했고, 아들 없는 형수에게 당질 중현을 양자로 들여 한 살림 차려줬으며, 동생이 성장하자 분가 때 재산 절반을 뚝 떼어줬다. 어머니 하시는 말씀 “니 아버지 임종하실 때 ‘너 교육시키라’하셨다.” 이후부터 낮에 농사짓고 밤엔 공부하며 2000석을 마음에 두고 살았다. 여기까지는 우리나라 부자열전 거의 비슷한 이야기이나 유 선생의 특이한 행적은 이제부터이다. 1894년 갑오경장으로 과거제도가 없어지자 꿈 많은 지망생들이 허탈해 방황할 제 ‘무슨 묘안이 없을까’하다 큰 판을 벌렸다. 이리저리 통문을 내고 가까스로 군수 허가를 얻어 만경강 둔치에 전국 재사들을 불러들였다. 이 모습을 보려고 원근 각처 노소와, 상인 구경꾼 해서 경찰 추산 1만5천여 명이 모였다. 당시 백일장 문제는 ①고풍(古風)-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 ②부(賦)-맥추(麥秋) ③시(詩)-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었고, 우수자 160인을 골라 상을 주었다. 1912년 4월 20일 이날 유리 분위기를 오늘날로 치면 ‘로컬푸드’ 원조인 셈이다. 전 의금부도사 이학재(李學宰)는 ▲우루 집안! 탁월하지 않나? ▲이게 우루학(愚陋學)이다. ▲온갖 이익만 낚아채려드는 낚시꾼들을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지 않나?… 이렇게 감탄했다. 다음해 향교 석전제를 마치고 명륜당에서 도내 유생을 대상으로 칠서(七書)와 소학(小學) 강좌를 열었다. 『우루재창화편 상(愚陋齋唱和編 上』을 보고 쓴(2016.3.16) 칼럼에서 말했듯이 자호 ‘우루재(愚陋齋)’를 두고 유병양 선생은 ‘나 어리석고 누추한 사람이라.’ 끊임없이 설명을 하였다. 그러나 우인·선배·지인은 공자 예화까지 들며 ‘그런 사람 아냐!’, ‘절대 그게 아냐!’ 이런 글이 쌓였고 이 글을 두 권 책이 담아 놓았다. 개인의 사재로 연 백일장(白日場)과 강권학(講勸學)을 열었음은 대학·문화재단·향교도 어려운 일이다. 전 이조판서 윤용구(尹用求)는 “유군의 장학 성심을 몇 줄 글로 어찌 다 밝힐 수 있으랴”이렇게 표현했다. 132면 이 책을 어느 단체 누가 번역해 낼 것인가? 삼례는 위대하다. 위대하기에 기대해 본다. /이승철=칼럼니스트/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한국국학진흥원 자문위원회 운영위원
최종편집: 2025-06-24 17: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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