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내려온 마전(馬田), 마랏[말안] 그 이름이 점점 사라져가며, 효자 4동 혹은 문학로(文學路)에 익숙해져간다. 그러나 가까이 가보면 전주시내 종중문화 제1호라 말해도 손색이 없다. 700년 전에 세운 문학대(文學臺)서부터 부조묘(不祧廟) 양후사, 황강사, 시중묘(侍中廟), 재실(완산, 영모, 순응 삼모 외), 서원, 신도비, 고려형 사각석축묘(四角石築墓), 비석, 홍살문, 정려각, 관리사, 우물을 고루 갖추었고, 연고 깊은 어른 가운데 중심인물은 단연 이백유(李伯由)이다. 개국 초 마흔 두 살에 금의환향 전라감사로 오니 마전 찾는 거마(車馬)가 하도 많아 삼밭[麻田]이 마소 매는 밭으로 바뀌었다 해서 ‘마전(馬田)’이란다. 권력 앞에 줄 서기는 언제나 마찬가지로 그래서 인맥을 잘 이어나가야 한다. 고려 말 최용갑(崔龍甲)은 이백유 외할아버지 전주출신이다. 최용갑이 1320년 문과에 장원급제 좌찬성 이부상서(吏部尙書)를 했는데, 이백유는 외손자이고, 오몽을(吳夢乙)은 조카사위, 심효생(沈孝生)은 처이질 모두 개국공신에, 처조카 황거중(黃居中)은 원종공신이었다. 세상을 내다보는 안목이 있어 1380년 이성계가 남원 운봉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돌아오는 길에 전주에 들리니 스물아홉 살 외손자 백유와 함께 오목대 잔치를 베풀어 군대까지 크게 대접했다(黃氏/完城古誌). 이백유 고모부는 유극강 판서로 그 아버지가 전주유씨 시조 유습(柳濕)이니 혼맥들이 대단했다. 최용갑 처조카 황거중은 고려에서 광주(光州)목사를 했고, 용안성(둘레 4,240척, 높이 11척, 샘 열, 못 하나)을 쌓을 때 감독을 했으며, 조선에서 정당문학·전서·판서를 하고도 장수하여 전주 영웅 가운데 오직 이 어른만 『사가재(四佳齋集)』을 남겼다. 사가 황거중이 이백유 스승으로 보인다. 황씨 집안에 1729년 족보 초간본을 찍어낸 목판 일부가 남아있다. 고려 말 조선 초 호남 정치사나 씨족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이백유 동서가 조견(趙狷)이고, 조견·조준(개국공신)은 형제간이다. 이백유 할아버지 이문정은 억불숭유 개혁정책을 주창하다 불이익을 받았고 고향에 내려와 마전에 정자를 지었는데 이 정자가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문학대(文學臺)이며, 그 아래 천년 된 우물이 있다. 이씨는 1년에 한 번쯤 물을 퍼내고 목욕제계(沐浴齋戒)하는 기분으로 전후좌우를 살펴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모르는 게 죄는 아니나 알고 행해야 양반소리 유지한다. 이제까지 추앙받은 전주이씨 꼭 할일은 마전 집성촌 사라진 사연을 돌에 새겨 역사라도 전해야 한다. 종무 임원은 보는 눈과 생각이 아주 달아야한다. 자꾸 찾아 올라오는 가야(伽倻)문화 발굴 활동을 보아라. 종중마다 종사(宗史)아는 사람을 골라 써야 융창한다. /이승철=칼럼니스트/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한국국학진흥원 자문위원회 운영위원
최종편집: 2025-06-24 17: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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