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자동차도 몇 해 지나면 싫증나 바꾸고 다시 사며, 옷도 해어져 버리는 게 아니라 수거함에 집어넣는 시대라 오래된 얘기도 버리라 한다.
버리다 보니 먹고 마시는 우물도 메우고, 수돗물이나 청정수를 마시는 판이라 도시 안에서 우물 보기 어렵다.
그런데 마침 1000년 된 우물 두 개가 전주시 효자동 마전 문학로 종중문화촌 완산재(完山齋)와 영모재(永慕齋)에 각각 있다.
이 자리는 전주이씨 시중공파(侍中公派)의 오래된 집성촌(마전, 마랏, 말안)으로 고려시대 이단신(李端信)·이문정(李文挺)의 고토(古土) 옛 집터[舊基:구기]이다.
사람마다 견해가 같을 수야 없지만 씨족간에도 시각차가 있어 소중한 줄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여기 사당, 정자, 재실, 관리사, 홍살문, 서원 150년 넘은 건축물 모두 귀하지만 이 우물은 고려→조선→대한민국의 역사와 똑같다.
이쯤 되면 신성시해야 하는데 몰라 못하고, 다른 데 정신팔려 ‘우물의 가치’를 제대로 모르는 무관심이 걱정이다.
‘한 우물 파라’는 격언을 따르며 ‘한 샘물 마시고 살았다.’는 인연을 자랑하는 동안 33세(世)를 내려 온 바가지 샘이다. 날잡아 물 퍼내고 역사를 얘기하며 소주 마시면 저절로 숭조돈종 이뤄지련만 이 짓을 못하니 보기에 안쓰럽다. 자위(自慰)라면 ‘메워버리지 않았음’이 천행이다.
우리 집 얘기하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김제는 벽골제(碧骨堤) 물 없어도 큰 행사를 한다. 완주군 제내리 지역을 다듬을 계획이라는데 혹여 메울까 걱정이다.
바닥을 파보는 건 좋으나 절대 메우지는 마라. 이 방죽으로 지명 ‘방죽 안’이 있고, 한자 표기는 ‘제내리(堤內里)’이다.
우주황씨 흥왕했던 시절의 옛 비석 바닥에 있을지 모른다는 답답한 전설을 풀으려면 꼭 지켜봐야한다.
이 방죽 천년 문제가 아니라 3국시대 아마 그 이전부터의 방죽일 수 있다.
동상면 명지목은 ‘명주 꾸리 하나를 풀어 재는 곳’이라 했는데 이리저리 다 메워졌다. 비석 새로 세우며 구비를 묻는데 감출 게 없다면 그대로 둬야 온당하고, 구비를 묻음은 유물 폐기로 조상님을 허투루 여기는 꼴이 된다.
전주 마전에 가장 오래된 이자(李粢) 묘비도 있다. 조상의 행적을 지켜나감이 종사이다.
하림 김홍국 회장은 나폴레옹 모자 하나를 26억원에 사들였고, 이런 배짱이 있어 병아리 열엿 마리로 시작 대기업이 되었다. 2019년 8월 20일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하였고, 사주는 8,800억원 투자 약속까지 했다.
전북에 있는 좋은 책이 슬슬 빠져나간다. 고서 수집가는 학자가 아니라 돈 되면 팔아버린다. 뒷걸음치는 전북문화 언제까지 두고 볼 것인가. ‘완판(完版)’이 어쩌구저쩌구 이 말이야 좋지만, 전북에 고서 도서관 있다는 소리를 아직 못 들었다.
/이승철=칼럼니스트/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한국국학진흥원 자문위원회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