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다. 올해는 유독 폭염이 칠월이 지나고 팔월의 중순이 되어도 수그러들 줄 모르고 위력을 과시했다. 이 같은 무더위에 강을 옆에 끼고 있어도 고산천에 몸 한번 담그지 못했다. 그러니 사오십년 전 만경강 고산천의 기억들이 아쉽고, 아련하다. 어릴 적 강둑에는 수령 250~300여년의 두서너 아름드리 둥구나무가 무리지어 강둑을 감싸며 우산과 양산을 펼치는 고산천의 명물이 되었고, 200여 미터 떨어진 강 위쪽 학다리 마을 앞에 초병처럼 두 그루의 둥구나무가 있었으나 오래 전에 늙고 병들어 사라졌다. 하지만 강둑에 새로 심은 느티나무가 아름드리 청년이 되어 기다란 제방을 지키고 있어서 삼사백 년 묵은 10여 그루의 둥구나무마저 떠나간다 하여도 만경강의 랜드마크로 둥구나무의 역사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여름이면 느티나무 그늘 밑에서 더위를 식히고, 강물에서 목욕하려는 어른, 아이들로 넘쳐나 마치 해수욕장을 방불케 하였다. 강 건너 넓은 자갈밭 끝자락에 아카시아 숲 제방 뒤 산자락에 자리한 마을이 내가 태어난 곳이다. 내가 아주 어릴 적 홍수가 강변을 휩쓸고 강변에 접한 집들이 침수 됐다. 때문에 마을 어른들이 즉석에서 틀어 만든 동아줄을 의지하여 고립 된 사람들을 구출한 후 마을 앞에 낮은 물막이 제방을 조성하고 아카시아를 심었는데 금세 큰 나무가 되었다. 나는 여름날 아카시아 그늘 밑에서 친구들이 모이면 무리지어 오륙 분 모래밭, 자갈밭을 지나 수영하러 강으로 갔었다. 청정수 강물에 뛰어들면 개구리 수영으로 한나절은 지칠 줄 몰랐다. 나는 언제나 무리 중에 선두를 달렸으나 나 보다 둥구나무 아래 사는 김건택이라는 친구는 수영실력이 물개 같았고 지금 같으면 올림픽 메달 감이었다. 넓은 강변에는 곡식과 농토가 부족하지만 개간을 못하고 흙모래 벌에만 호밀과 보리를 심었으나 거친 풀밭 자갈밭과 모래 벌은 야생의 꿩이나 새들에게는 낙원이 되었고 특히 재잘대는 종달새는 하늘높이 봄날의 주인공 되었다. 가난을 벗어나려고 용트림 하는 정부는 개간사업과 건설의 붐을 일으키며 만경강 건너편에 제방을 쌓아 홍수의 피해를 예방하고 부족한 토지를 조성하고 다리를 놓고 도로를 신설하여 살기 좋은 지역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진주알 같은 자갈밭 설원 같은 모래 벌을 생각 없이 공사장으로 쓸어가 버렸으며, 지겨울 정도로 내리던 궂은 장맛비는 언제부터인가 실종 되었고 비다운 비나 눈다운 눈은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웬만한 비는 우거진 산야가 흡수해 버려서 강바닥에 물이 흐르지 않으니 둔치에는 온갖 잡풀과 갈대, 억새가 무성하고 심지어 버드나무가 군락을 이뤘다. 또한 코골고 있는 물웅덩이에는 수영이나 물놀이는 고사하고 들어갈 수도 없고 아무리 더워도 들어가고 싶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늪 같은 강이 되었다. 이제 유리알 같은 만경강 고산천은 흔적마저 찾을 수 없으니 여름날 피서를 가려면 맑고 푸른 계곡이나 강과 바다를 찾아서 떠나야하는 집시 족이 되었다. 그나마 곳곳에 작은 물막이 보를 조성한 크고 작은 물웅덩이 덕분에 야생의 들오리 떼와 해오라기나 두루미의 낚시터가 되었다. 뿐만 아니다. 무성한 잡풀과 갈대와 억새풀의 푸른 초원이 되어 사바나 동물들이 찾아온다면 죽음의 마라강도 없으니 꿈같은 오아시스가 될 것 같다. 그래도 우뚝 선 명품 둥구나무가 경비를 서고 낚싯대를 늘어뜨린 한가로이 올망졸망 헤엄치는 들오리 떼와 가끔씩 해오라기나 두루미가 큰 날개를 휘저으며 순찰을 돌고 있어 살아있는 명품 한 폭의 풍경화가 되어준다. /최정호 = 국가유공자·시인
최종편집: 2025-08-09 21: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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