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면민은 입이 무거워 동상면에 대한 글 쓰거나 말거나 지켜볼 뿐이지 말이 없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는 자연의 기(氣)와 남다른 천성이 여느 속인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고산현(高山縣) 12면 시대가 있었고 그 가운데 동상면(東上面)은 원 이름 그대로 유일하게 지켜 나오는 면이며, 11개면은 한참 설명해야 좀 알아들어 동상면에 고산 역사가 살아 숨 쉰다.
△동상면은 완주에서 가장 너른 땅을 지닌 부자 면으로 탐나는 자리가 많다.
△한 면에 저수지가 둘. 1급수 수십억 톤(t)은 수자원의 최고봉으로 물 파는 일 봉이 김선달(金先達)에게 맡겨야하겠다.
△육군부사관학교 운암산 유격장은 우리의 희망이요, 기상이다. 중국 장자(莊子)는 ‘높은 산에 올라서야 사해가 보인다(如登高山而望四海:여등고산이망사해)’고 했는데, 여기를 두고 한 말처럼 들리며, 관모봉(冠帽峰) 등산객이 탄복한다. 바위가 묘비(墓碑)인 금석문 이야기도 있다.
△만일 대아수목원과 대둔산 도립공원이 없다면 외지 관광버스 완주 올 일이 없다. 먹고 쉬어가게 붙잡아야 한다.
△최용각 묘는 동상면에서 가장 오래된 무덤으로 무학대사(?) 전설이 신묘하여 전주최씨가 대한민국 농림부를 이겨내게 한 명당이다.
△새재, 밤치, 싸리재, 주천 넘나드는 고개를 막으면 개미새끼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는 천혜의 요새(要塞)이다. 동상면민 심기를 건드리면 아니 되는 이유 여기에 있다.
△진안군 대불리(大佛里) 지명. 동상면민의 인심에서 붙여졌다. 두 청년이 고산장(4일, 9일)에서 만나 소금 한 통씩을 지고 새 재를 넘어 굽이굽이 돌아 산내에 이르러 짐을 바치며 “나야 내 동네 다 왔지만 어찌 그대 홀로 보낼 수 있겠소!” 동행자는 짐을 번갈아 지고 싸리재를 넘겨 보냈다.
이 얘기를 들은 마을 사람마다 “동상면 양반을 ‘큰 부처[大佛:대불]’로 여기자, 소리 잘하는 사람들 마을이라 해서 ‘대불리’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밤재’는 슬픈 사연에 쌓인 이름. 볼일 있어 재를 넘어가면 멀고 험해 ‘밤에나 돌아오는 재’라 「밤재」인데, 배부른 사람들이 ‘밤[夜:야]’을 엉뚱하게 ‘밤[栗:율]’으로 바꿔쳤고, 혹자는 일정시대 운운 떠넘기기도 한다.
△동상면민은 ‘원추리 꽃’ 기질이다. 원추리 어린 봄엔 나물 감이요, 뿌리는 약재, 다년생 풀로, 꽃 색깔이 화사하며 꽃말은 효도이다. 꽃잎 여섯 장은 ‘동(東)’자와 같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운장산(雲長山:1126m)은 생명을 품어 안은 완주 제1 어른 산이다. 늦은 소개 어색하고 부끄럽다. 쓰레기장, 교도소, 연구시설 욕심내는 층이 많다. 인구 적고 순하다보면 억울한 일 당할 수도 있으니 동삼(動蔘) 먹은 기운으로 다 함께 뭉쳐나가자. 사람 출생은 고종시 절대 닮지 말아야 한다.
/이승철=칼럼니스트/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한국국학진흥원 자문위원회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