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삼례제일교회 1903년 3월 5일 서신리에 초가 3칸을 사 창립예배 때 교인 17명, 관리목사 마로덕(미국인), 영수(領袖) 장경태, 집사 정창신이었다. 교회사 서문 성산(聖山) 김성배(金聖培) 목사가 썼는데 달필이다. 교회 관련 얘기는 여기서 멈추고 김성배 목사 아우 김춘배(金春培) 실화를 소개한다. 아버지 김창언(金昌彦)은 삼례 초대교회 신자. 김창언은 1918년 가족을 데리고 만주 용정(龍井)에 이사 포목상을 하였다. 맏아들 김성배 독립군에 참여했었고, 그 뒤 김춘배(21살?) 1927년 2월 만주 돈화현(敦化縣) 지청천(池靑天) 장군 정의부(正義府)에 들어가 일본 영사관을 습격하는 등 간도를 뒤흔들었는데 ‘가족을 몰살하겠다’는 경찰 협박에 못 견뎌 자수. 6년 형에 탈옥으로 벌이 가중돼 서대문형무소에서 근 8년을 지내고, 1934년 4월 출감. 7개월만인 10월 신창주재소 무기고를 털었다(장총 6, 권총 2정/ 실탄 800발). 어업조합을 침입(?) 자금마련은 만주독립군과 합류하려는 계책이었다. 2만명 포위망을 뚫고 오른 서울행 기차 안에서 붙들려 ‘무기징역’형, 또 다시 서대문형무소 수인이 됐다. △‘근래 희유(稀有) 함남 권총사건’ △‘철옹성 경계망 돌파 경관에 발포’ △‘북청에 홀현(忽現) 순사부장 또 사격’ △‘신출귀목 19일간 대단한 범적(犯跡) 극적장면’ △‘연 2만 경관·민 동원, 총 경비 2만원(圓)’…당시 신문 제목이다. “삼례 출신 김창언 아들 김춘배가 1934년 10월 함경남도 신창(新昌)주재소 격납고 습격 19일간 종횡무진 북청(北靑)을 누비며 일본 순사부장 옆구리를 뚫었다.” 일본인 가토(加藤伯嶺) 기록물 『괴도전(怪盜傳)』이 있다. 김춘배 호적부에 ‘1942년 7월 8일 사망’. 공부 이렇다면 옥사가 분명하다(1946. 12. 1 사망설 불확실). 아버지와 겨우 여섯 달을 지낸 외아들 김종수는 1947년 단신으로 월남, 전주기전여중·고 행정실에서 일하며 14년 동안 신문사와 유관기관을 더듬어 자료를 찾아 56년만에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아냈지만(?) 지금은 고인이며, 손자 김경근도 60을 넘었다. 2019년 7월 8일은 바로 김춘배 의사 옥사(?) 77년인데 ▲물 한 잔 꽃 한 송이가 없고 ▲향불 하나 피워 올릴 사람 없으며 ▲교회 많으나 기도 한 마디 없을 것이니 이게 우리고장 의식 수준이다. 방송인 유시민이 ‘중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했다. ‘김경근! 자기 조부이니 자기가 선양하라고?…’ 혹 이렇게 말한다면 너무 야박하지 않을까. 삼례나 완주 지식인은 항일무장투쟁 김춘배 의사의 옥사 77년을 보며 무심코 넘어 갈 일 아니고 감각 더 이상 무뎌선 아니 되겠다. 『암야의 총소리(60면)』 복사본 네 부가 마침 내게 있다. 갈수록 많아질 가설(假說)을 완주군 누가 풀어낼까! 문인 학자 예술인 ‘건(件)’이 없어 고민이라는데 완주 어느 명사가 손대려는지! /이승철=칼럼니스트/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한국국학진흥원 자문위원회 운영위원
최종편집: 2025-06-24 17: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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