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수 고서 수집가를 아는데 책보다 간찰이 더 비싸다고 한다. 그 말을 들어서가 아니라 무심코 옛날 노트를 넘기다보니 1987년 5월 12일 보낸 유선옥 편지가 있다.
32년 전에 받은 글로 “선생님께.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선생님께 편지를 올립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건강은 어떠하신지요? 저는 선생님 염려 덕택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 쯤 선생님 이마에는 잔주름이 더욱 굵어져 가고 있을 거예요. 선생님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그리고 선생님 3학년 담임은 절대 맡지 마세요. 3학년 담임을 맡으면 속만 상하잖아요. 그리고 주름도 더욱 많이 생기고요. 그러니 건강에 조심하세요. 또 에이즈 병에도 조심하고요. 그럼 이만 펜을 놓겠습니다. 안녕히 지내십시오. 1987. 5. 12. 유선옥 올림”
옛날 간찰보다 더 귀중한 편지이다. 지나간 32년에다 당시 나이 열다섯 살을 더하면 47살(?) 내외로 짐작되는데 만나고 싶으나 주소·전화번호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저 유선옥이예요.’ 해도 학생 시절 그 얼굴 기억날지 모르겠다. 혹 천운으로 만나 이 편지 보여주면 자기 필체에 놀랄 것이다.
??주름살 걱정을 했는데 지금 얼굴은 마른 호도 같고, 3학년 맡지 마라 했는데 중학교 3학년생 만나기도 어렵다. 꼭 잘 지키라던 당부 ‘에이즈 병’에 걸리지 않았고, 미투(Me Too)에 들통 날 과오가 없어 다행이다.
솔직한 말 ‘저 예쁜 학생 며느리 감으로 좋은 디!’ 이런 생각 한 적이 한 번도 없어 혹 어느 누가 은군자(隱君子)라 해도 거북할 게 없다.
글씨체가 좋고 편지지 사용이나 보낸 날짜 본인 성명 쓴 자리 등등 정성이 철철 넘쳐난다.
왜 내 주름살 걱정을 했나 알 길 없으나 다음 페이지에 이런 글이 있다. 한국일보(1987. 7. 12) 장숙희(張淑姬) 기도문 “이한열 열사는/ 참외 열고 꽃 많이 피던/ 지산동(芝山洞) 집을 떠나/ 이제 여기 수많은 민주 열사들과 함께/ 동무되어 영영 묻혔습니다.”, “80년 5월 꽃바람 불던 날/ 숨져간 목숨이 부족해/ 꽃다운 젊은 목숨이/ 산 제물로 열사 앞에/ 바쳐져야 합니까?”
열다섯 살 중학교 소녀가 중년 선생 주름살 걱정을 한 뜻에 짐작이 좀 간다. 당시 시국문제 누가 편했겠나?
소녀 유선옥이 내 마음에 거울이구나. 나 진정 여자들을 존경하였다. 어느 여자와 토론을 마치며 마지막 그의 귀에 대고 할 말 한 마디 믿거나 말거나 ‘나 이렇습니다.’하면 놀랄 것이고, 이는 내 말 ‘인정한다.’는 뜻이겠다.
지금은 스승의 날을 부끄러워하고, 스승의 날 피하는 선생이 있으니 이런 편지 주고받기 어려울 것이다.
유선옥을 만난다면 난 뭘 먼저 물어 볼까? 에이즈 병 걱정을 한 이유를 알듯하다. 순결은 인격이고 자랑이다. 나 ‘학생들을 구분 없이 가르쳤나(有敎無類:유교무류)’ 뒤돌아다보며 유선옥 보라고 32년 만에 이 답장을 보낸다.
/이승철=칼럼니스트/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한국국학진흥원 자문위원회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