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리는 ‘원래의 터’ 즉 중심이란 뜻으로 구이면소재지이다. 전주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12km. 임실 운암과 강진을 거쳐 순창으로 이어지는 국도 27호선이 시원스럽게 지나가는 주변에 두현, 원기, 항가, 계곡, 백여리가 있고 이 가운데 원기리에 들어서면 마음 쏠리는 곳이 많다.
▲첫째, 모악산(793m). 1971년 12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힘이 들어도 오르고 싶으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김제평야와 만경평야가 펼쳐진다. 꼭대기 근처에 ‘엄마가 애를 안은 듯한 모양새의 바위’가 있어 ‘모악(母岳)’이란다.
예로부터 충청남도 ‘신도안(新都安)’·영주시 풍기읍의 ‘금계동(金鷄洞)’과 함께 큰 명당(明堂)이라 하여 난리 통에 피난처로 이름이 났고, 그래서 무속 신앙의 본거지로도 유명하다.
대원사(大院寺) 경내의 4기와 그 밖의 여섯 기의 부도 가운데 ‘용각(龍刻)부도’가 눈길을 끈다. 연꽃을 새긴 받침돌 위에 배부른 원통 모양의 몸통을 올렸다. 몸통 맨 위엔 구름을, 가운데에는 두 마리 용이 서로 휘어 감으면서 여의주를 빼앗으려는(?)듯한 모습을 했다.
▲둘째는 세내[三川:산천] 윗머리 구이저수지. 모악산 등 여러 골짜기 물이 흘러든다. 1953년 3월 27일 착공했는데 지금이라면 집단민원 반대로 막기 어려울 것이다.
①구이제(九耳堤) ②구이제취수탑(九耳堤取水塔) ③방명비(芳名碑) ④‘용지불갈(用之不渴:써도써도 마르지 않음)’이라는 표지석의 글대로 4철 푸른 물이 출렁이며, 4월의 제방 아래 벚꽃은 원기리의 자랑이다.
▲셋째, 전북도립미술관. 완주군 구이면 모악산길 111-6(지번 원기리 1068-7)에 세운 동기가 좀 착잡하다. 김태식 전 국회의원이 미술계의 요청과 항의를 받고 기금을 마련했다는데 전주시내에 세울 땅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밀리고 또 밀려 결국 이 자리에 세웠다.
▲넷째, 전주김씨 (全州金氏) 시조 김태서(金台瑞) 묘. 모악산 선녀폭포를 지나 등산로 샛길을 따라 400여m 쯤 오르면 구이저수지와 너른 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에 있다. 명당이라 소문이 나 우석대학교 김두규 교수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찾아드는 이유는 풍수적으로 대명당이며,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34대조 산소라는 데에 더 주목을 받는다.
김정은 위원장이 2018년 들어 핵문제로 문재인 대통령,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주석과 만나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어느 누군가가 정좌계향(丁坐癸向:동북향) 갈마음수(渴馬飮水) 자리 봉분 위에 불을 질러 액(厄)을 끼치려는 듯한 심술을 부렸다.(전북일보 김두규 글).
‘김태서는 1254년(고려 고종41) 왜구의 침입으로 경주 일대가 짓밟히자 일족을 이끌고 전주에 정착, 3년 후에 죽자 여기에 묻혔다.’고 한다.
지금 구이면(九耳面)의 ‘구(九)’는 원래 ‘구(龜)’이었다. 마치며 구이면은 ‘아홉 귀[耳]’를 열고 살아가야 한다. ‘아홉 귀’ 설명은 다음에 따로 하겠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