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군장애인복지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장애IN기자수첩에 참여하고 있는 장애인기자단은 지난 7월 26일 완주군 용진읍 지암안골 42길에 위치, 완주군 유일의 모자원인 이산 모자원을 찾았다. 나 역시 기자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나는 처음 ‘모자원’이 ‘엄마와 아이가 살고 있는 시설’일 것이라는 얄팍한 상식을 갖고 방문 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그 이상의 새로운 세상임을 깨달았다.
이산모자원에 대해 잠시 소개한다. ‘이산’이라는 이름은 현 오화정 원장의 조부(祖父)의 호(號)란다.
조부가 전쟁고아들을 불쌍히 여겨 지난 1977년도에 진안에 ‘이산 애육원’으로 설립했고, 이후 지난 1997년 용진읍으로 이사 오면서 이산모자원으로 재탄생했다.
앞서 말했듯 이산모자원은 전쟁고아 돌봄으로 시작 했으나, 전쟁 중 남편을 잃은 한 부모 가족을 해체 위기로부터 보호하고, 나아가 건강한 가정과 자립기반 마련으로 지역사회의 통합을 도와 사회복지증진에 기여하는 이산모자원으로 발전했다.
‘가난은 나라님도 못 구한다’는 옛말이 있다. 나 하나 먹고 사는 것조차 힘든 상황 속에서도 남을 생각하는 고(故)이산 원장님의 숭고한 정신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원장님은 출타 중이었고, 대신 박미경 국장님과 직원들이 우리 장애인기자단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날 우리가 박 국장님과 모자원의 지나온 역사에 대해 나눈 인터뷰 속에는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감동을 주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운영해오면서 겪었던 고충도 많았단다. 보조금과 지원금으로 운영하지만, 늘 부족한 부분은 후원으로 메워야 하는 데 실상 현실은 후원 받는데 매우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또한 모자원이라는 이름이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에게 상처가 돼, 결국 모자원 기피현상을 막아 보자는 뜻으로 ‘빌리지’ 로 개명해야했던 아픔도 이야기했다.
화제를 바꿔 자랑하고 싶은 사례와 아쉬운 사례를 물었다. 먼저 가슴 따뜻한 이주 여성(필리핀)을 말했다. 이 이주여성은 한국 남성과 결혼해 행복을 꿈꾸었으나 살인에 이를 정도의 폭력에 시달리다 급기야 자녀들을 데리고 와서 상담치료를 받고 좋아져 지금은 상담사로 일하고 있다는 훈훈한 사연을 소개해줬다.
그녀의 아들도 고등학교에 잘 다니고, 딸은 필리핀에 거주 중이라고 한다. 필리핀은 20살이 되면 축제를 해주는데, 그 축제를 모자원에서 하고 싶다고 하여 가을에 축제를 열 계획이란다.
최종 꿈은 필리핀에서 펜션 사업을 하는 것인데, 이유는 ‘필리핀을 방문하는 한국여행객들이 편히 쉬어가게 하고 싶어서’라고 말해 이산모자원 직원들을 환하게 웃음 짓게 했다고.
반면 아쉬운 사례에 대해서는 미혼모를 한 번도 성공시키지 못한 점을 꼽았다. 현재는 완주군청이 들어서면서 주변 환경이 전보다는 많이 좋지만 그 이전에 이산모자원이 시내와 동떨어져 접근이 용이하지 못해 적응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나는 “모자원에서 참으로 귀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고마움을 느꼈다. 끝으로, 설립목적을 끝까지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원장님과 직원들의 노고에 힘찬 응원을 보낸다.
/서숙희=장애IN기자수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