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은 1988년 정년퇴직을 하였으니 살아 계시다면 95세일까요? 출생지는 봉동읍 성덕리 214번지입니다.
선친 이종렬(李鍾烈) 공의 10남매 중 장남으로, 자녀는 5남 2녀 모두 대학 교육을 시켰습니다.
▲1943년 일본 야마구찌현(山口縣) 다카미즈(高水)중학교 5년을 졸업했으며 ▲1945년 3월 전주사범학교 강습과를 나와 ▲완주 화산-초포-이성-용진-상관-고산에서 평교사로, 운선 교감, 산북-수선-봉성-봉동초등학교 교장을 역임한 것 외에 일시 경북 고강(교사), 전주호성-우전학교 교장을 거쳐 대리국민학교에서 교직 43년 8개월 정년퇴임을 했습니다.
△교실이 모자라 운동장 한 구석 돌을 걸상 삼아 가르쳤고 △교사 신축비 마련을 위해 수레를 끌었으며 △학부모가 쌀과 보리를 거둬주어 생활했다는 퇴임사 구구절절은 눈물 없이 읽을 수 없습니다. △100m 지하수를 끌어 올렸답니다.
“…산 좋고, 물 맑고, 인심 후한 이곳…”의 표현으로 봐 시골에서 마치셨습니다.
△교직원이 드리는 송시(訟詩)에 “귀촉도 울음에 갈 길을 재촉하고/ 먼 길 서두는 짚신이 외롭습니다./…/가시는 걸음걸음 만수를 밟고/ 웃음이 피는 장미 밭에 여생을 펴셔/ 단 이슬에 취하는 포근한 삶 되소서.”
△동 직원 박복균은 “…스승의 길, 그 험하고 어려운 길을 걸어오시느라 머리엔 찬 서리가 내리고, 이마엔 훈장처럼 주름만 늘었다.”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재학생 대표 송별사에서 “나는 어린이를 위해 존재한다!” 이 학생이 아니었으면 영원히 묻혀버릴 말씀입니다.
△김기호 지역교육협의회장은 환송사에서 “…실험실습을 위해 아담한 과학실을 만드셨고, 급식학교로 지정받아 ‘영양 급식’을 하게 되었으며, 창고를 세우는 등 실로 헤아릴 수 없는 공로를 쌓으셨습니다.”
△양삼례 자모회장은 “…대리에 오신지 6년!…꼭 시아버님 같으신 분으로 친절하게 자상하게 여러 가지 학교일이며, 우리 ‘새마을 어머니회’ 일도 도와주신데 대하여 감사합니다.…하나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기 기원합니다.”
△벗 김갑배 교장은 “…이제는 친구들에게 그렇게도 억세게 한 잔 술이라도 더 권하려던 인정을 줄이시고, 한평생 학봉 선생 뒷바라지에 희생하신 부인께 더욱 정주시면서 두 분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시도록 축하 메시지를 올립니다.”
△송익상은 에서 “…남에게 봉사도 많이 하셨습니다. 여생 편히 쉬시면서 집안 일, 삼락회 일, 경주이씨 문중 일 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제자 박규서와 같은 학교 직원 김완영 학생들의 명문은 지면이 모자라 생략합니다.
군계일학(群鷄一鶴) 우리 모두의 스승입니다. 이달 정년퇴임하는 분들도 이런 환송을 받는지요. ‘담소자약(談笑自若:늘 웃으며 침착함)’ 저의 뚜렷한 기억입니다. 차남 이상준은 부전자전 겸양하여 사무실 들린 손님을 계단까지 나와 배웅했습니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