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운리는 완주군 소양면 자치센터 소재지이다. 전주시내에서 20리. 전에는 5일장(3·8)이 섰다.
황운리는 우선 지나는 사람이 많았다. △진안-장수-무주-영남 가는 사람 △송광사, 위봉사, 원등사를 찾아드는 보살과 탁발승 △성묘 나선 전주류씨, 전주이씨, 전주최씨 △위봉산성 역사(役事)에 동원된 백성들 △동학혁명 당시 이 태조 어진이 광감재(曠感齋)서 자고 여기를 지나 위봉산성 행궁에 갔다. △성경 보따리를 짊어지고 곰티재를 넘나들던 선교사 △난리를 피해 숨어드는 도망자 △땔감 하러 새벽에 나선 나무꾼[초부:樵夫]들… 하여간 독특한 지역이다.
특히 ‘임진·정유왜란 때에 웅치(熊峙)를 넘은 왜군이 전주성을 향해 구름처럼 밀려들자 우리 군사가 이에 맞붙어 싸웠고, 당시 말굽에서 피어오른 누런 먼지가 마치 구름 같았다’해서 황운리(黃雲里)란다.
정재윤 소양면장이 면사무소를 새로 지으며 2017년 8월 29일 황운로에서 만나자마자 “다 된 정자 이름 ‘황운정(黃雲亭)’ 어때요?” 이 물음에 “글자야 훌륭하지만…” 위의 얘기를 줄여서 들려주니 “그럼 다른 좋은 이름 없어요?” 되묻기에 “‘소양정(所陽亭)’이 괜찮지요.”
정 면장은 별말 없이 받아드려 명필 현액(懸額)을 드높이 걸었다. 정재윤 면장은 왜 ‘소양정’을 쉬 받아드렸을까?
예나 지금이나 ‘소양(所陽)’은 매력이 넘친다. 조선시대 전주부에서 소양을 보면 ‘해[태양:太陽] 돋는 장소(場所)’ 곧 동쪽이다. 우리 민족은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하늘[천:天]과 해[태양:太陽]를 존엄하게 여겼다.
누구나 만일 하늘(천주, 하나님, 하느님, 여호와)이나 태양신을 노엽게 하면 천벌(天罰)을 받는다는 생각이 뼈 속까지 새겨져 있었다. 전주 감영에서 볼 때 소양은 ‘하느님’과 ‘태양’ 마을로 뵈는 것이었다. 정재윤 면장은 이 말이 와 닿은 게다.
아비규환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피어오르는 ‘누런 먼지 구름’보다야 ‘태양’이 훨씬 고상하므로 수장으로서 밝은 쪽을 얼른 선택했고, ‘소양정’을 수용한 면민도 위대하다.
나그네는 소양교 옆 주덕재(周德齋) 표석을 보고 현장에 갈 만하며, 대승리 만육 최양 묘소도 가깝다. 초등학교 뒤편 거사비(去事碑, 去思碑)는 면사무소 너른 마당으로 옮겨와야 한다.
황운리에 익산↔장수고속도로 IC가 있어 진주 점심 나들이를 하는 사람이 있단다. 중학교, 농협, 우체국, 보건진료소가 있고, 시내버스 ‘8○○’번은 황운리를 거친다. 이런 사유로 배산임수(背山臨水) 높은 자리까지 깎아 집을 짓는다.
소양교회 오래 됐고, 여기 시무하던 이○○ 목사 쌀을 갖다 쓰고 갚지 않은 신도 아무개는 어디서 뭘 하며 어떻게 사는지! 이런 사람이 마을 인심을 사납게 했다.
‘소양면 개청100주년 기념비(이계임 면장)’는 오래 간다. 누구나 좋은 이름을 남겨야 한다.
일기예보에서 미세 먼지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임란 때의 ‘황운(黃雲)’이나 마찬가지이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