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戰) 때 한국군이 약 9천 명 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했다지만, 한국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우리군의 베트남 전 참전은 1964년 9월 11일 1차 파병을 시작으로 1973년 3월 23일 철수할 때까지 8년 6개월 간 연인원 31만2천853명(최대 5만 명)의 병력이 파견되었다.
이중 5,099인 사망자와 11,232인 부상자를 내고, 159,132인 고엽제 피해자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10여만 명이 나오는 등 전쟁 후유증을 우리 역시 겪고 있다. 귀국 후 병사자가 많이 나온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나라는 베트남 전에서 피 흘린 대가로 외화 획득이라는 경제적 이득을 얻었다. 병장 54달러, 상병 45달러, 일병 41.1달러를 받았다.
그것이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한국군 현대화에도 기여했다. 북한이 우리를 두려워하고 무섭게 여긴 것도 우리 군의 베트남 전 참전 때문이라는 말도 나왔다.
우리의 용맹성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 과정에서 무리한 전쟁 수행도 있었을 것이다. 1964년 8월 2일 북베트남의 통킹만에서 미국 해군 구축함 ‘매독스 호’가 북베트남에 의해 공격을 받는 이른바 통킹만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은 이를 빌미로 군사 개입을 시작해 베트남 전쟁에 개입했다. 그러나 그것이 자작극이란 사실이 30년 후 공개된 비밀문서에서 드러났다.
공산화 도미노의 위협 때문에 월남이 무너지면 동남아시아가 공산화된다는 논리로 전쟁을 일으켰지만 베트남이 공산화되었어도 이 시간 현재 공산화 도미노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베트남이 미국의 맹방이 되었다.
미-베트남 수교 이래 미국은 중국을 막기 위한 미국의 전초 기지로 베트남이 사용되고 있는 것만 보아도 당시 미국의 오판(?)을 말해준다[필자:이계홍/ 소설가. 부레이크뉴스 주필(2018. 4, 10)】”.
브레이크뉴스 문일석 발행인의 ‘글로벌시대 한미동맹… 친미-반미 개념이 확 달라졌다! (2017. 9. 30)’ 제하의 글에서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에는 미국의 국외 전쟁에서 희생된 23만 명의 주검이 묻혀있다. 6.25 전쟁에 참여했던 미군 사망자 36,574명, 실종 3,737명이었다. 그 외 부상자 102,284명, 포로 4,439명에 달했다. 한반도 전쟁에 참전했던 많은 미국 군인들이 희생됐다. 미루어 짐작하지만 한반도에서 제2의 전쟁이 난다면, 6·25전쟁 때 보다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올 것”이라고 지적 한바 있다.
6·25전쟁 중 중공군 인명 피해가 사망 11만6천여 명, 행방불명 및 포로 2만9천명인 점을 고려하면 지암리·파로호 전투 때 중공군은 막대한 희생자를 낸 셈이다(2018. 6. 26 연합뉴스).
하늘에 빌어서라도 전쟁만은 피해야 한다. 아이들의 불장난도 무섭거늘 전쟁을 막아야 한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을 어서 하루 빨리 종전선언으로 바꿔야 사람들이 편히 산다. 65년 전 조약 체결 자는 모두 갔다. 버릴 헌옷이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