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만에 발굴 재개, 왕릉급 실체 일부 드러나. 대왕릉 내부에서 인골 가득 담긴 나무상자 발견. 전형적인 백제 사비기 굴식돌방무덤 방식 확인”, “익산시 석왕동에 위치한 익산쌍릉(사적 제87호)의 판도라 상자가 마침내 열리기 시작했다.” 2018년 4월 3일 기사이다. 익산과 완주는 이웃이지만 옛날부터 다른 점이 많다. 이는 문화 수준과 지식인의 관심 여부 차이이다. 완주는 발굴이 적었고 도굴은 많았다. 발굴이란 ‘책임 있는 기관이 절차와 법에 따라 제대로 열어보는 것’이라면, 도굴은 ‘부장품이 탐나 몰래 파고 들어가 훔쳐내는 불법 행위로 못된 짓’이다. 고산면 삼기리 봉림사지는 2017년 발굴했으나 글씨를 찾지 못해 허탈해 하고, 운주면 대둔사(금당사)는 돈도, 관심도, 지원도, 의욕도 없으니 발굴에 엄두도 내지 못한다. 고산면 읍내리 완주문화원 건너편 산자락에 많았던 거사비가 없어진지 50여년,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조차 귀해진다. 당장 발굴할만한 곳은 고산면 서봉리 누운기러기재로 길가 정씨네 종산, 비록 도굴이야 당했지만 석실 무덤이 있다. 음악, 미술, 연예, 사진, 해설, 문예 방면에는 전문가가 많으나 는 귀한 편이다. 문화원이야 있지만 유사문화단체가 많아 이런 일에 관심 가질 틈이 적다. 역사 공부는 현장학습이 최고다. 우선 간판이라도 세우면 지나는 이가 읽어본다. 예산만 주면 일 잘할 군청의 유원옥·이도일·장기재가 있어 다행이다. 봉동읍 제내리에 있는 ‘3정승 소나무’는 나무 값보다도 이름값이 수천만 원. 이는 안내판 때문인데, 고산 현(군)청 터에는 제대로 된 안내문 하나 없음은 주민과 당국의 소홀함이며, 고산 사인봉(舍人峰) 백운사 뒤편에 성터 흔적이 완연한데도 가 본 사람이 적다. 일본이 우리 영토인 독도를 제 것이라 우겨대는 걸 보라. 남의 것도 욕심내는 세상에 우리는 제 것 챙기는 데에도 뒤쳐지니 부끄러운 일이다. 운주면에 건설 중인 저수지 물은 뉘 것인지 주민이 모른다. ‘고산↔소양 오도재 터널을 뚫자’는 사람 언제나 나오려나. 화산면 종리 하룡마을 앞 도로 지금대로가 좋다. 길 넓혀 곧게 내면 자동차로 2∼3분 방음벽까지 치면 면 전체 3개리(가천·경천·구제)는 기억에서 사라진다. 구만리는 회안대군이 만년을 보낸 곳이다. 2020년은 서거 600년이다. 마침 『행록』이 나와 다행이다. 이계임 전 소양면장(현 군청 과장)이 재임 때 세운 는 2017년 새 집 지어 이사하자 옛 청사 지킴이로서 큰 역할을 한다. 이게 선견지명이다. 완주문화원 마당에 누어있는 비석은 누가 언제 일으켜 세우려나. 이병선(李秉先) 전 현감이 기다린다. 문화재법은 무서워졌고, 도굴꾼들은 말없이 다 갔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
최종편집: 2025-06-24 13:3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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