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쉴 새 없이 변하다보니 뉘 말이 옳은가 종잡을 수 없다.
젊은이의 희한한 말 “스마트폰 하지 못하는 노인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어른은 기가 막혀 아무 말도 않으니 젊은이가 “스마트폰이란 휴대전화에 인터넷 통신과 정보검색 등 컴퓨터 지원기능을 추가한 지능형 단말기로, 사용자가 원하는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할 수 있는 것이 특징, 기능면에서 ‘휴대전화’와 ‘컴퓨터’가 결합된 형태입니다.”
이 사람 말대로라면 노인들은 ‘뒷방영감’ 대접을 서운케 여기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젊은 이 장로 “목사는 스마트폰 쓰는 사람, 어른들은 이를 못해 소통이 아니 되는 것”이라며 은근히 목사 편을 든다.
노인 왈 “컴퓨터 e-메일 열어보고 전화도 가끔 하며, 물어 보는 게 올바른 목자 아닌가?” 정곡을 찌른다.
장로는 지지 않고 “이는 옛날이야기… 지금은 스마트폰 시대로 목사 문제 아니다”고 말한다.
노인은 “스마트폰 못해 소통 대상이 아니라면 교회 나올 것도 없고, 성금 낼 필요도 없지 않느냐?” 이 말을 꾹 참는 듯이 자리를 뜬다.
손 편지 사라지고, e-메일도 아니 열어보며, 손가락만 곱작거리는 게 최고라고 강변하는 젊은 장로는 교회에 약이냐? 독이냐?
시제에 나온 젊은이는 촌수·항렬 따라 인사할 줄 모르며, 대학교 졸업식장에 들어서지 않는 졸업생 많고, 여자에게 돼지고기 나쁘다는 교사의 말이 ‘성 차별’이라 받아들이는 이 여학생 장차 시집가 아내 노릇 제대로 하겠나. “그러니 시집가지 않는다.” 여자들에게는 이런 마음이 깔려있다.
사회 무너져도 너무나 무너진 게 아닌지. 박물관, 전시장, 둘레길이 좋아 이야기 거리 많고, 의식주가 안정됐으며, 비싼 학비 들인 결과 집집마다 교육 수준이 높고, 법이 있어 주먹 위력이 꼼짝 못하는 세상인데도 반가운 사람이 없다면 이는 보통 문제가 아니다.
왜 사람 마음들이 이리 기울어졌나. 해인사 희랑대의 조실 보광(77) 스님이 한 말씀 해주기 바란다. 도올 김용옥 선생께서 바른 판단을 내려주기 바란다.
청렴연수원 입구에 ‘청렴이 대한민국을 바꾼다’라 새긴 표지석(3m×1.9m)이 있다는데 재질은 화강암, 글 아래에 ‘이천십이년 가을 대통령 이명박’이라 새겨 있다. 요즈음 이 돌을 묻느냐 마느냐 논의 중이다.
누군가는 알아 두어야 할 명언 “…가시 달린 나무는 한 아름 되게 크기 어렵고, 가시 없어야 한 아름 큰 나무로 자란다. 가시 없는 나무라야 큰 나무 되어 ‘집도 짓고 대들보’로 올라간다. 가시 없는 큰 나무는 여러 모로 쓸 수 있으나, 가시나무는 쓸모가 별로 없느니라.”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제 생각만 옳다고 고집부리면 가족도 싫어한다. 생니와 의치 겉보기엔 비슷하나 근본적으로 다르고, 조강지처와 기녀 같을 수 없다. 입맛 떨어지면 밥 소용없듯이 관계가 멀어지면 인연이 끝장이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