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많은 그릇, 그 이름 다 알기 어렵다. ‘대기만성(大器晩成)’ 이 말은 일이 잘 풀리지 않아 터덕거리는 사람에게 하는 격려사이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재수하거나, 대학 마치고 취업 준비하는 학사들이 불안해 할 때에 위로의 말이었다.
입후보했다가 실패한 이에게도 이 말이면 무난한 인사이다. 6월 13일 당선을 바라보는데 선뜻 좋은 구호가 떠오르지 않으면 “군(도)민의 ‘그릇’이 되겠습니다.” 이 말을 써봐라. 그 근거 여러 곳에 있고 수수께끼에도 나온다.
‘그릇’은 우선 커야 많이 담는다. 집안에 쌀통 없이 마분지 봉투에 됫쌀 팔아다 먹는 사람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웠고, 바깥 샘을 쓰던 시절에 물 항아리 큰 집안이 부자였다. 논산시 연산면 개태사와 보은 법주사 솥은 큰절이었음을 말해 주는 유물 아닌가?
“가마 솥 밑이 ‘노구솥‘ 밑을 보고 검다고 한다.(釜底笑鼎底:부저소정저)” 이는 제 허물은 모르고 남을 흉보는 ‘ㄴ’에 이르는 말이다.
선거 때 상대방 비난하지 말고 자기 할일만 이야기해야 ‘그 사람 그릇이 크다’ 이 소리 나와서 당선된다.
‘동냥을 주지 않을 바엔 쪽박이나 깨지 말라.’했으니 유권자는 표주지 않을 바엔 험한 소리 하지마라.
입후보자 내심에 없는 말 함부로 하면 ‘사심불구(蛇心佛口)’란 소리를 듣는다. 이 보다 더 나쁜 후보는 대놓고 악담하는 사람으로 이런 성미는 언젠가 유권자에게 대든다.
조선시대 송시열과 허묵(許穆)은 입장이 아주 다른 정적이었다지만 우암 송시열이 병이 났을 때 허묵의 화제로 약을 써 나았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큰 ‘그릇’ 아닌가?
역대 정치인 중 몇몇은 통일한국 대통령 감! 남한만의 대통령 감! 경찰청장 정도의 궁량과 ‘그릇’이었던 인물 있었다.
왕건은 궁예보다 ‘큰 그릇’이라는 믿음을 얻었다. 지조 중요하며 쟁기와 경운기는 트럭터와 다르다. 공무원노동조합원들 보통 인물이 아님을 인정해야 ‘큰 그릇’ 소리 나온다.
화산중학교 임병교(任炳敎) 전 교장이 맏딸 정혼을 하고 빌려준 쌀을 달라하니 ‘어려워 갚을 힘이 없다’고 해 큰 낭패를 겪었지만 임 교장 월급 타는 날이면 돈 얼마씩을 채무자에게 갖다 주며 ‘어서 복구하라’했다.
GM자동차회사 군산에서 진국은 다 빼먹고 달아나는 꼴과 비교할 때 임병교 씨 천사이다.
1970년대 야반도주 한 자는 서울 가 돈을 벌었음에도 그까짓 것 쌀 몇 가마를 갚지 않아 내외 평생 고향 한 번 오지 못하고 객사했다. 소견머리가 밥상의 간장 종재기만도 못한 탓이다.
그릇이 소중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신약성경에 ‘나의 그릇’이란 말이 나온다. 후보자마다 마음이 커서 도(군)민들마다 ‘나의 그릇’ 소리가 절로 나오게 처신하고, 포스터엔 큰 그릇을 그려 넣어 ‘큰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
이기려거든 참모를 바로 써야 한다. 어깨띠보고 표 찍는 사람 드문 세상이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