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 고생 안한 사람 없습니다만 주어진 지면 관계상 부득이 무술생(戊戌生 :1898) 한 여인을 소개합니다. 1964년 오형선이 주도하여 『고산지(高山誌)』를 냈고, 구연건이 제공했을 것이라 짐작되는 글 넉 줄을 보았습니다. ‘정절(貞節):구연옥처 조씨(具然玉妻趙氏)’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마 고산지역에서 이처럼 불운한 여성 드물 것입니다. △화산면 종리 용소마을에 살았습니다. △남편 구연옥(具然玉:1899년생)이 개화도(界火島) 간재 전우 선생 밑에서 공부하는데 병을 얻어 집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 때 전 선생이 써 보낸 편지에 ▲“아마 아내 그리워 난 병 같아 걱정이오니 먹고 마시는 걸 조심하고, 특히 부부간 잠자리 사이에 휘장을 처 가까이 하지 않게 하시오.” ▲조씨 이 소리를 전해 듣고 여러 달 각 방을 썼고 ▲머리 빗질과 세수도 안했으며 ▲온갖 지극정성을 다 했으나 병은 깊어져 죽으니 ▲그해가 1918년 고인 나이 20세 ▲부인은 스물한 살 청상과부가 되었습니다.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으나 ▲슬픔을 참았고 예를 다해[抑哀盡禮] 거동을 삼가하며 ▲시부모 모시기에 게으르지 않았고 ▲슬픔을 억제하며 부모님 위로해 드리니 ▲시숙(연직:然直)이 가련케 여겨 둘째 아들 희서(熙書)를 양아들로 주었습니다. △향촌에서 남편 존재를 있게 함은 오로지 조씨 고생과 정절 때문이라는 칭송이 자자했는데 이를 아는 사람은 다 가고 이 얘기 통하는 분조차 없습니다. △양아들 희서(熙書)는 전주고교를 마치고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 갔으나 어찌된 일인지 개업을 못했고, 양며느리 전주최씨는 교통사고로 갔습니다. △홀아비가 된 양아들은 술로 마음을 달래다 결국 우울증에 걸려 죽었습니다. △할머니 조씨는 손자 관회(琯會)·정회(呈會)를 중학교에 입학시켜 전주에서 방을 얻어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남편 없이 홀로 산 세월이 54년, 험한 세상 기나긴 고독 75수(壽:1972년 졸) 그 비참함은 독자의 상상에 맡깁니다. 이게 한국 여성의 삶이었습니다. 조씨 탄생 120년에 서거 47년을 잊기엔 너무나도 짧습니다. 가정법원 찾는 젊은 부부는 이 글을 읽기 바랍니다. 자녀 헤어지라는 부모 없습니다. 지금 번쩍하면 성범죄 성폭력 검사가 검사 성추행 이게 사람 도리입니까? 위의 조씨 본관은 함안(咸安), 아버지는 제방(濟邦)입니다. 이런 여인이 있어 함안도 화산면도 우러러 보입니다. 관회 연락 바랍니다. 여성 존경해야 합니다. 여인 존대 받아 마땅합니다. 남편 스물한 살에 숨지고 그 이전에도 각 방을 썼다니 이 여인의 인내심 극기정신 오직 한국인이기에 가능했던 위대한 절개입니다. 여성만 보면 정욕이 일어난다니 심히 부끄럽습니다. 여형제를 생각하시오. 곧 남자들 거세해야 한다는 운동 일어날지 모릅니다. 미투 운동(영어:Me Too movement)에 걸리면 살아남을 자 없습니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
최종편집: 2025-06-24 13:4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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