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4일 자문회의가 있었다. 시정표와 함께 받은 회의자료(30p)를 보니 2018년도 운영계획이 대단하다.
△예술가가 사랑하는 곳 △주민의 사랑을 받는 곳 △여행객이 북적이는 곳 즉 ‘문화도시 완주’를 만든다는 엄청난 포부이다.
자세한 여러 항목 모두에 호감이 가지만 특히 그 중에 ▲예술농부 ▲문화 이장 ▲문화예술 창작지원이 눈길을 끈다.
첫째, 예술농부는 로컬푸드와 연결을 시킨다는데 고산휴양림이 바로 로컬푸드 행사장이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시랑골’이다. 산이 깊어 나무꾼들이 세칭 ‘시랑골 대학’이라 부르며 지게꾼이 모이던 곳, 어찌 보면 자학의 땅임을 묘사한 이름이다.
그런데 사정이 바뀌어 신사 숙녀 젊은이가 모이고 보니 여기에 숨은 뜻이 그럴듯하다.
“사나운 짐승 우글거려 ‘豺狼(시랑)’골이냐? 선비들 시를 읊어 ‘詩朗(시랑)골’이냐? 낭자 총각 백년가약 맺자는 ‘侍郞(시랑)골’이냐? 높은 벼슬아치 侍郞(시랑) 나온대서 ‘시랑골’이냐? 나무꾼 고시랑고시랑 진학 못한 젊은이들이 눈물을 삼키며 찾아들어 ‘시랑골’대학이었더냐? 북풍한설 으스스 볼 시려 ‘시랑골’이더냐?”
이런 저런 사연이 많더니만 역대의 수령들이 ‘아! 이거다’하며 시랑골을 개발하자 옛말대로 시인이 오고, 선남선녀가 모여들어 날마다 철마다 높은 산 고산휴양림이 선경을 이루었다.
사람 귀한 시골이 시렁시렁하지 않아서 좋으니 부모랑 친구랑 연인이랑 ‘시랑골’서 실컷 즐기며, 로컬푸드 마지막 날에는 관민이 함께 지게춤판을 벌려본다면 이게 바로 ‘농부예술’이 아닐까.
둘째, ‘문화이장’ 멋지다. 알아야 이야기를 한다. 문화이장은 ‘모르면 묻고’, ‘알면 알려주기’로 멋진 구상이다.
셋째, 돈 벌려 글 쓰는 건 아니지만 컴퓨터 속의 글을 끌어내기 위해 지원금을 준다니 이 이상 좋은 제도가 또 어디 있나.
무명가수가 많듯이 무명작가도 여럿이다. 어머니(아내)는 요리사 자격증이 없어도 최고 맛을 내듯이 문학작품들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햇빛을 보게 하는 착상 훈장감이다. 이외수는 강원도에서, 고은은 경기도에서 집을 지어 살리지 않나. 이게 문화상품이다.
직원 5인이 하기엔 벅찬 일이다. 2018년 개헌 때 지방자치문화청(가칭)을 두기로 하면 어떨까. 완주군내에 ‘문화예술’을 표방하는 단체가 80여개 남설(濫設)로 보인다.
대원군은 서원의 지나친 남설을 보다 못해 결국 철폐령을 내린바가 있다. 한 날 같은 지역에서 주관처를 달리하여 비슷한 내용의 행사를 하는 걸 보았다. 겹치기 행사는 낭비라는 비판이 따른다.
소금은 짜야하고 설탕은 달아야 한다. 꿀 탄 데 설탕을 치면 좋은 요리가 아니다. 막걸리에 청주를 타면 제 맛이 아니다. 당사자들이 더 잘 안다. 완주문화재단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설에 지나친 경쟁은 금물이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