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에 ‘완주군 이서면 이문길 46-3’을 입력, 지시하는 대로 운행을 하다보면 ‘삼촌농장’이란 곳에 도착한다.
삼촌농장은 지난 2007년 귀농한 윤선웅(44)·이수경(42)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올해로 귀농 10년 째.부부는 친환경 농업만을 고집, 인내와 끈기로 온갖 시행착오를 거쳐 성공적인 귀농생활의 본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최근 완주에서는 유일하게 백향과(패션프루트, Passion fruit)를 유기농으로 재배·생산, 각종 매스컴에 소개되는 등 주목을 받고 있다.
■ 도시생활 끝, 귀농 결심
윤 대표는 산업공학과 출신으로, 지난 2000년에 대학을 나와 경기도 자동차 회사에서 금형개발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대학 때 만난 아내와 결혼에 골인, 도시에서 맞벌이를 하며,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생활했다.
하지만 40·50대 은퇴하는 선배들을 보며, 자신도 15년, 20년 뒤, 똑같은 길을 걸을 수 있겠다는 불안감에 귀농을 결심, 7년간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2007년 7월 고향인 완주 이서로 귀농했다.
사실 귀농을 결정하게 된 것도 아내 덕분이다. 반복되는 삶의 고단함을 벗어나기 위해서였지만, 고향이 부안 계화도 간척지인 아내가 쌀농사만 해도 직장생활보다 훨씬 수입이 많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
■ 농업인으로 자격 갖춰
완주 이서로 귀농 6개월 후, 윤 대표는 2년 동안 처가살이 했다. 완주 이서는 농토가 작았지만, 부안 계화가 간척지인 이유로 벼는 물론 하우스를 17동할 정도로, 규모가 커 농사를 제대로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 윤 대표는 2년 동안 생활하면서 하우스 재배 기술, 트랙터 등 농기계 사용법 등을 터득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귀농 후 농사를 짓기 시작, 2009년 창업후계농, 영농후계자에 이어 2010년에는 쌀전업농에 선정됐고, 종자관리사를 비롯 종자기사, 유기농업기사, 식물보호기사, 조경기능사, 농기계운전기능사, 지게차 운전기능사 등 농업관련 자격증도 거의 취득했다. 농업 공부가 재미있기도 했지만 스스로 ‘농업인으로서 자격을 갖추자’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얼마 전까지 이서귀농귀촌협의회 총무를 맡았고, 현재 이서면지역발전위원, 방범대 활동도 하고 있다.
그는 귀농 10년간의 많은 활동 가운데, 2009년 마이스터 대학에 입학한 것이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강조했다.
농대가 아닌 공대를 나와 공부한다는 게 쉽지 않았지만 대학 4년 동안 총무와 사무국장을 역임하며, 농업에 잔뼈 굵은 학우들로부터 농업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고, 친분을 쌓아, 오늘날 농사를 짓는 데 큰 자양분이 됐단다.
■ 백향에 매료 돼
벼농사 외에 처음에는 유기농 하우스하면서 8월에 단호박을 심어 12월에 출하하고, 참외도 재배했다.
또 2월에는 열무를, 옥수수는 1월에 심어 5월에 수확했는데, 다른 농가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로컬푸드에 나오지 않는 품목을 골라 기획·생산하자는 전략이었다. 이러한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고, 자신감도 생겼다.
로컬푸드에 없는 품목을 찾다가 키위도 고민했지만 위험성이 높아 포기했다.
그러던 중 농업진흥청의 보도자료 등에 소개된 백향과에 매료돼 재배를 결심했다.
윤 대표는 곧바로 백향과를 국내에서 처음 시작한 전라남도농업기술원과 해남의 아열대연구소, 농가 등을 직접 찾아가 재배 방법에 대한 궁금증을 물었다.
■ 시행착오 겪다
잠깐 백향과에 대해 알아보자. 백향과(百香果)는 백가지 향과 맛이 나는 과일이라는 뜻으로, ‘패션푸르트’라는 이름으로 익숙하다.
여성에게 좋은 석류보다 비타민 C가 3배 이상 높고, 식이섬유가 많아 변비개선에 효과적이다.
또 노화방지에 효능이 있는 니아신(5배)과 카로틴 성분이 함유돼 있어 일명 ‘여신의 과일’로 불리며, 최근 각광을 받고 있다.
소개는 이쯤으로 하고, 다시 윤 대표의 유기농 백향과 하우스 이야기를 이어가겠다.
윤 대표는 앞서 얘기 했듯, 전남에서 재배 방법과 기술을 배운 뒤, 곧바로 600여평의 하우스에 백향과를 심었다.
하지만 처음 농사짓다 보니 시행착오도 겪었다. 간과했던 총체벌레가 끝순을 갉아먹어 더 이상 자라지 않았고, 더욱이 번식 속도도 빨라 당황하기도 했다.
“백향과는 우리나라에서 재배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적용 약제가 없어요. 총체벌레 관련 친환경 자재가 있는데, 저 같은 경우 6가지를 한 달 동안 한 개씩 테스트 했습니다.”
또 쥐며느리라는 공벌레가 나무 테두리를 갉아 먹어 나무를 죽이는 피해도 입었다.
토양 살충제를 뿌리면 간단히 해결되지만 유기농이다 보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해 오리농법도 시도했다. 이 마저도 2차 오염문제 때문에 중단했다.
“유기농업기사도 있지만, 식물보호기사 자격증을 딴 이유도 병해충과 풀의 생태 등에 대해 알고, 응용해서 해법을 찾기 위해서 였죠.”
■ 땀흘린 노력의 댓가
백향과는 온도 조절은 물론 하루에 1미터씩 자라는 등 생장속도가 빨라 순을 잘라 줘야하고, 일일이 붓으로 인공수정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도전했다가 힘에 부쳐 포기하는 사람이 많단다.
윤대표가 올해 겨우 백향과 재배 2년차인데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이유는 인내와 노력 덕분이다.
실제로 백향과를 납품할 때는 저녁에 작업해 놓고, 새벽 6시 30분부터 로컬푸드 직매장 11곳을 오전 내 돌고 온 후에는 다시 와서 주워 담고, 자르고, 숙성시키고...윤 대표의 하루 일과다. 이렇듯 잠시도 쉴 틈 없이 일의 연속이다.
백향과뿐 아니다. 벼농사도 9천여평 짓는다. 벅차고 피곤하지만 대한민국 유기농 백향과 3농가(‘16년 기준) 중 하나라는 자부심으로 버텨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전주와 완주 11개 로컬푸드직매장을 통해 수입도 제법 거두고, 서울과 부산 등 타 지역에서의 주문량도 늘었다.
“유기농으로 재배하다 보니 믿고, 먹는 주문하는 고정고객이 40~50명 정도는 같아요. 이 분들 중에는 한 번에 5~10만원씩 매월 주문하는 경우도 있고요.”
■ 윤 대표, 친환경을 말하다
“제대로 된 친환경이 돼야 합니다. 보조금에 의한 친환경이 돼서는 안되죠.”
친환경 교육은 뒷전, 보조금을 받기 위한 친환경은 결국, 소비자에게 불신을 준다는 것이 그의 지론.
“농사짓는 사람들이 좀 힘들겠지만, 공부를 제대로 하면 친환경처럼 쉬운 것이 없고, 무엇보다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해 소비자를 이롭게 하죠.”
예를 들어 밭농사의 경우 어쩔 수 없이 토양 살충제를 살포할 경우, 작목을 심기 전에 하면 수확기인 3~4개월 뒤에는 어느 정도 없어진다는 것.
농업인이 공부해서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얻는 것, 그것이 바로 농업인의 역할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 행복, 그리고 꿈
“제가 자동차 개발하면서 안성에서 광주를 하루에 3번, 천안에서 울산을 하루에 두 번 왕복했고, 석 달 동안 한 달 반을 날을 샌 적도 있었죠. 늦은 퇴근 시간에 부정맥까지...건강도 악화됐어요. 직장생활을 과감히 정리하고, 귀농해 힘든 농사를 짓지만 마음 편안히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아요.” 요즘 행복이 무엇인지 절실히 느껴본다는 윤 대표.
자신의 행복 뿐 아니라 이제는 귀농·귀촌하는 사람들이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도움을 주고 싶단다.
덧붙여 언제든지 고향에 내려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도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지금껏 함께 옆에서 고생한 아내와 인생을 바꾸게 한 아들 건호(6)에게 감사하다”는 삼촌농장 윤선웅 대표의 말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