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안대군(1364 ~1420)은 세종대왕의 큰아버지이다. 대왕은 조카라는 말이다.
임금이 부른다. 가기가 싫다. 그러나 다시 부른다. 어명이다. 집을 떠나 서울로 간다. 그런데 1420년 3월 9일 충청도 은진 여사(旅舍)에서 눈을 감았다.
식중독? 심장마비? 뇌출혈? 아무도 모른다. 행장에도 신도비명에도 병사라는 말 외에는 사인이 없다. 그럴수록 더욱 궁금해진다. 패자의 역사는 이런 게다.
백제가 신라에 망했으니 ‘백제 역사’가 어둠침침하다.
그렇지만 될 수 있는 한 패자도 챙겨 주는 게 인권존중이다. 산자는 죽은 자를 생각해야 한다.
회안대군 후손들의 입장에서 ‘2020년’은 꺾어지는 해 회안대군이 서세하신 600년으로 그럭저럭 넘어 가선 아니 된다.
회안대군 대종중은 △자손이 많고 △종재도 넉넉하며 △역사가 뚜렷하고 △어찌됐던 말 못할 여한이 뚜렷하니 동상을 당당하게 세워야 한다.
이런 일에 처지는 지역이 전라북도요, 전북에서도 유독 완주가 힘이 달린다. 다 아는 이유라 굳이 말하지 않는다.
자손 중 이희권은 역사학자요, 전 종중회장 이홍기는 대단한 성력자이다.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 3,000만원을 주선하겠다는 일꾼이 있고, 다재다능한 사람이 많다. 일에는 기회가 있어 일꾼이 큰일을 해낸다.
전주이씨 대종약원에선 덕진에 세울 조경재(肇慶齋) 건축비 20억원을 책정하고 모금 중인데 순조롭다고 한다. 기회가 용하게 딱 맞아 떨어졌다.
윤봉길, 유관순, 민영환, 안중근, 전봉준, 이순신, 김일손, 성삼문 동상이 있다. 전남 보성은 외가에서 일곱 살까지 살았다는 연고 하나로 서재필 박사 사당과 동상을 세웠다.
단양엔 정도전 동상이 도담 삼봉을 내려다보고, 충북 옥천엔 월북작가 정지용의 동상이 있다.
인천엔 맥아더 장군 조형물이 있는데, 완주에 동상이 있어선 아니 된다는 법이 없다. 그 당위성을 제대로 모를 뿐이다.
토산→안산→순천→홍주→전주는 회안대군의 귀양지로, 특히 전주는 자원해서 온 적소(謫所)이다.
은진 여사에서의 죽음 소식을 들은 김포금씨(琴氏)가 쏟은 눈물이 금만경 들을 적셨고, 여기에 연유한 이름이 ‘새만금’ 아닌가. 여기 ‘금’은 금(金)과 금(琴) 서로 통한다.
금산군(金山君)·금성군(金城君) 자손들이 먼저 힘을 모아야 한다.
박포는 이중간첩이 아니면 희생양일수도 있다. 동상 곁에 소 조형물을 세워야 한다. 친구의 죽음에 놀라 타고 간 말 대신 ‘소’를 타고 와 아호가 망우당(忘牛堂)인 그 인간미를 기억해야 한다.
초상화가 없다고? 태조 수용과 세종대왕 얼굴을 참고하면 능히 묘사해 낼 수 있다. 돈이 걱정 성의 문제이다.
완주에 동상이 있던가? 흉상도 없다. 2020년이 양희공께서 가신지 600년 자손이 영웅을 만들어야 한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