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기부’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니 ‘개인이나 단체의 역량을 다양한 분야에 활용함으로써 나눔을 실천하려는 새로운 기부형태’라고 정의했다.
자신이 가진 특별한 능력과 재능을 남에게 나누는 것은 아름다운 기부라 할 수 있다.
이 아름다운 기부를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 잰걸음으로 찾아갔다.
완주군 삼례읍 버스터미널 인근에 위치한 센스안경원 오상영 대표(49)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저소득층 아동, 독거어르신 등 소외계층에게 십년 넘게 무료로 안경을 지원, 밝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해주고 있는 가슴 따뜻한 남자와의 데이트, 지금 시작한다.
■ 오 대표, 고향이 김제야?
삼례에 살고 있는, 또는 자주 찾는 단골손님들은 깜짝 놀랄 수도 있겠지만 센스안경원 오상영 대표의 고향은 김제다.
1995년에 삼례로 이사와 올해로 23년째 살고 있다.
오 대표는 평범한 농부의 3남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인사 잘해라’, ‘남 속이지 마라’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했던 아버지 오길환(82)씨.
원칙과 기본을 잘 지키라는 부친 덕분에 현재 큰 형은 안경점 대표, 남동생과 여동생은 대학교수로 재직 중이란다.
■ 올해로 23년, 삼례 주민 되다
오 대표는 전주의 한 안경원에서 3년 정도 일하다, 창업을 결심하고, 1995년에 삼례에 10평 남짓 작은 가게를 얻어 ‘감각’을 뜻하는 ‘센스(sense)’라는 이름으로 안경원을 시작했다.
4년 뒤인 1999년, 지인의 소개로 아내 이은아(46)씨를 만나 결혼에 골인했고, 지금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 지원(14)이, 세 식구가 알콩달콩 살고 있다.
물론 고향 김제가 아닌 삼례라는 낯선 곳에 정착하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당시 안경점이 4곳이나 있었고, 처음 누구나 겪는 일이겠지만 이 지역사람이 아니다보니 작은 텃새 때문에 조금 힘들었죠.”
하지만 23년이 지난 지금, 오 대표는 지역주민의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며 삼례 주민들에게 늘 감사의 마음을 갖고 산다고 귀뜸했다.
안경원 역시 이제는 지역 주민, 특히 어르신들이 언제나 쉬어갈 수 있는 따뜻한 쉼터가 돼 주고 있다.
■ 봉사할 수 있어 행복해요
현재 삼례로타리클럽과 삼례생활안전협의회, 두 개의 봉사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오 대표. 이래봬도 두 단체의 창단 멤버다.
“고향은 아니지만 지역에 정착해 살다보니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 두 단체에 들어갔어요.”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나환자촌 위주로 봉사하다, 교회나 단체에게 의뢰·추천을 받는 등 무료 안경봉사의 범위를 확대했다.
2002년도부터는 로타리 이름으로, 매년 자원봉사센터에 두 번 돋보기 150개, 삼례 어르신 30명에게 300만원 상당 근용안경을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또 2010년부터는 완주군 드림스타트(취약계층 아동 맞춤형 통합서비스)와 협약을 체결, 매년 어려운 환경에서 아동들을 키우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30명에게 안경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전주를 비롯 인근 지역으로 확대됐고, 오 대표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삼례새마을부녀연합회, 완주군수, 전주시장과 환경단체, 전북도의회의장, 교회 등 기관 및 단체에서 잇달아 감사패를 증정했다.
무료 안경지원과 함께 오 대표가 애정을 갖고 추진하는 것이 장학금 지원이다. 안경원 문을 열고 들어서면 테이블 위에 작은 저금통장이 놓여있는데, 장학금의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제가 안경을 고쳐주면 서비스를 받으신 분들이 얼마냐고 물어보시는데 그냥 통장에다 100원이든, 500원, 1000원이든 알아서 넣고 싶은 만큼 넣으시라고 해요.”
이렇게 1년 동안 모은 돈은 대략 20~25만원 정도. 처음에는 읍사무소에 전달하다, 지금은 로타리로부터 추천을 받아 장학금으로 내놓고 있다.
삼례로타리클럽 이름으로 제공하니 자신은 생색이야 나지 않겠지만, 누군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행복하단다.
■ 기억에 남는 일, 많지요
“시골 분들에게 좋은 안경을 해주고 정말 잘 보이게 해줄 때, 특히 인근에 안과 전문 병원이 없다보니, 급한 환자는 봐주기도 하는데요. 그런 게 보람이죠.”
실제 용접을 하다 슬래그(용접똥)가 눈으로 들어가 급히 찾아오는 주민들을 식염수로 빼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또 웬만한 안질환도 식별이 가능하다보니 백내장 등 수술이 필요한 사람들은 병원으로 보내기도 한다.
“원래 하면 안 되지만 어떻게 하겠어요. 그렇게 조치하지 않으면 각막에 손상이 가거나, 위험한 상황에 이를 수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안경을 해준 어르신들이 안경원에 들어와 ‘정말 고맙다’며 음료수 한 병 들고 찾아 올 때가 가장 보람 있다고.
■ 공부, 끝이 있나요?
오 대표에게 안경은 단순히 사물을 잘 보이게 하는 도구가 아니다. 안경은 우리가 아는 일반 상식과 달리 과학적이고, 기술적이고, 섬세한 부분이 많단다.
‘안경이 단순히 소비자들에게 가격만 붙여서 만들고, 판매하면 안 된다’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의료 용구다 보니 컴퓨터상에 나타난 굴절 이상도만 가지고, 손님들에게 안경을 맞춰주다 보면 손님들이 상당히 불편함을 느낍니다.”
장비가 좋아져도 해결이 안되는 게 많다는 것. 그가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뒤 석·박사까지 취득한 것은 물론이고, 안경원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 이제 여유를 갖고, 자신의 삶을 즐길 만한데, 아직도 논문을 쓰고, 안경관련 전문서적을 내려놓지 않는 이유다.
결국 꾸준히 공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그는 거듭 강조했다.
20년 넘게 안경원을 운영하면서 다녀간 등록 고객만 5만여명.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정작 삼례주민은 30%밖에 되지 않고, 전주나 익산 등 외부에서 오는 손님이 나머지를 차지한다니 아이러니 하다.
“전주에서 목회를 하는 한 목사님이 전주에서 가장 큰 안경원에서 안경을 했는데, 계속 불편함을 느껴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우리 안경원에 왔어요.”
오긴 왔지만 역시 시골 안경원이라 못 믿는 표정을 지어, ‘속는 셈 치고 맞춰보라’고 오 대표가 권했다.
이후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인들이 많이 안경원을 찾았단다. 그의 실력이 인정받은 셈이다.
■ 항상 웃으며 살아야죠!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라는 속담이 있듯, 오 대표의 좌우명은 ‘항상 웃으며 살자’다. 가훈이기도 하다.
항상 웃고 즐긴다는 것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보다는 마음이 편하면 사람이 웃게 된다는 것.
“딸이 웃지 않고 있으면 저와 아내가 항상 ‘너 고민 있니?’라고 물어봅니다.”
딸 지원양은 공부하는 것이나 돈 쓰는 것에 대한 고민은 안한다. 단, 친구관계 있어서만 고민한다.
아내도 마찬가지란다. 음식을 하면 늘 이웃에게 나눠줘야 마음이 편할 만큼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한다.
“제 딸에게 늘 ‘남에게 베풀고, 친구에게 양보하고, 손해 보듯 살아라’고 말합니다. 저희 두 직원들에게도 항상 같은 얘기를 하죠.”
■ 우리가족, 고맙고 사랑해요!
오 대표가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어머니 김수임(77)씨다.
한때 불도저 운전으로 멀리 공사현장에 나갈 때면 홀로 낮에는 농사일로, 밤에는 공장에 나가 일했는데, 프레스에 손가락이 절단돼 병원에 두 달간 입원하면까지 4남매를 훌륭히 키웠다.
“평생 감사한 마음으로 보답하며 살아야죠.” 완주 수영대표에서 지금은 초등학교 수영강사로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는 아내와 건강하고 밝게 잘 자라준 딸에게도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지면을 통해 전하고 싶다는 오상영 대표.
새삼 기자에게 ‘행복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정답을 알려준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을 느끼며, 그의 지금까지의 안경봉사활동이 앞으로도 지속되고, 민들레 홀씨처럼 멀리 퍼져 어려운 이웃들에게 큰 힘이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