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주변에 ‘애(愛)’자 들어간 상표가 흔하다. 유생들은 ‘경천애인(敬天愛人)’을 자주 쓰며, 교회에서 ‘사랑’ 소리 빼놓으면 남을 게 없을 정도로 입에 달고 산다. 그럼 도대체 ‘사랑’이 무언가? 이 물음에 상인, 유생, 목사도 ‘글쎄요’이다. 어렵다고 하는데 그 대답은 바로 ‘표현(表現)’이란다. ‘표현의 자유를 막는다.’고 가정해 보자. 이 이상 두려운 일이 어디에 또 있으랴? 그런데 모순된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과묵은 금(金)’ ▲‘말 않은 이가 진군자(眞君子)’ ▲‘말 많으면 공산당(共産黨)’. 이러면서도 생활에선 ‘사랑이 적다, 없다’ 아우성들이다. ‘표현’을 해도, 혹 안 해도 나쁘다니 도대체 어찌 하잔 말인가? 전제 조건이야 잘 안다. 나쁜 표현을 하지 않는 신사 숙녀가 되라는 주문이다. 지난 2017년 5월 9일 19대 대통령 투표 직전에 후보자의 TV토론 방송에서 5번 심상정은 좋은 ‘표현’으로 점수를 얻었고, 누군가는 얄미운 ‘표현’을 많이 해 호남에서 졌다는 분석이다. 서민들에게 왜 막걸리가 좋은가? 한 잔 들어가면 ‘표현’을 제대로 한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시민은 ‘몸으로’ 민주주의를 지켰다.”, “2016년 겨울부터 금년 봄까지 국정농단 척결을 촛불로 ‘표현’했다.”, “정치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표현’이 빠지면 목석이나 매 한가지다.” △외국 다녀와 ‘표현’이 없으면 그게 사랑이냐? △인사와 악수는 사랑의 ‘표현’이다. △부탁받은 번역문 몇 줄에 대꾸 없는 유생은 학자로서의 ‘표현’을 저버린 게다. △글을 씀도 ‘표현’ △신문사의 게재도 사랑의 ‘표현’이며 △독자는 필자와 신문을 사랑하기에 읽는다. 이런 ‘선순환’이 있어서 관계가 유지된다. 2018년 6월 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나오려는 사람이 차차 보이기 시작한다. ‘표현’으로 사랑을 이끌어내야 당선된다. 당사자나 참모는 곧 서점에 달려가 이민규 교수 지음 『표현해야 사랑이다』를 얼른 사 읽어 두어라. 스님, 유도회장, 목사가 표현 없이 ‘사랑’ 받기만을 바란다면 우습게 보인다. 조재영 전 비봉면장은 표현의 태도가 좋아 학력과 관계없이 고학력자의 열 몫 더 큰 존경을 받는다. 표현은 말과 글로도 한다. 입을 열고 살아보자. 교사 도종환은 상처하고도 사회운동을 했으며, 시인 국회의원이라 ‘표현’이 부드러워 주변에서 인정을 해주자 문화관광체육부장관이 되었다. 고산주민자치회는 를 통하여 자기 ‘표현’을 꾸준히(제19호)하던 중, 2017년 7월 7일 부임한 이서 출신 최병수 면장이 면지 발행에 앞장을 서서 연말까지는 ‘산고수장(山高水長)’ 1,500년 고산역사를 한 권 책에 담아낸다니 120년만의 경사이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
최종편집: 2025-06-24 13:3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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