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경찰서 진입로 옆 담장에는 고래를 타고 노니는 아이들과 경찰의 따뜻하고 평화로운 모습이 그려져 있어, 지나는 사람들을 절로 미소 짓게 한다.
‘고래의 꿈’이라는 제목의 이 벽화는 지난 2015년 4월, 완주 봉동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화가 김성욱(46)·은호동(41.펀아트스토리미술학원)부부작가의 재능기부로 완성됐다.
2개월 동안 지역 아동과 경찰서 직원, 주민, 청소년도 참여해 그렸으니 의미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007년 봉동으로 이사온 후, 완주가 좋고, 지역주민이 좋아 올해로 10년째 살고 있다는 김성욱 작가.
그가 그린, 또 그가 그릴 완주는 어떤 모습일까?
■ 칭찬 한마디에 그림 시작
김성욱 작가의 고향은 익산 왕궁이다. 평범한 농사꾼인 김정기(74)·노병숙(70)씨의 3형제 중 둘째로, 행글라이더 오래 날리기, 라디오 조립 등 만들기가 취미일 정도로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많았다.
그 덕분에 중학교 때까지 과학경시대회는 그의 독무대였을 만큼 상을 휩쓸었다.
이처럼 손재주가 좋다면 그림도 제법 그렸을 법한데, 그림에는 전혀 소질이 없고, 흥미도 없었던 모양.
그와는 달리 형은 고등학교에서 손꼽힐 정도로 그림을 잘 그렸고, 대학도 수석으로 입학해 현재 서울에서 꽤나 큰 입시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 그가 고등학교 입학 후 담임교사의 권유로 마지못해 들어간 미술부 동아리에서 활동을 하며 그림을 시작하게 된다.
어느 날 동아리 선배들이 과제로 내준 석고상 스케치가 웃음거리가 되고, 다른 친구들과 비교될 만큼 그리지 못해 동아리 탈퇴를 결심하게 됐다.
하지만 선배들은 한 번의 기회를 더 줬고, 그 날 밤을 꼬박 새며 그림을 완성하게 됐는데, ‘잘 그렸다’며 칭찬해준 덕분에 그 뒤로 미술에 점점 흥미를 갖게 됐다.
“인정받으니 자신감도 생기더라고요. 그 일이 계기가 돼 본격적으로 미술을 시작하게 됐죠. 물론 같은 고등학교 다닌 형도 제게 영향을 준 것도 있고요.”
■ 한국화의 매력에 푹 빠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광대 미술대 한국화과에 입학했다. 그런데 자신이 꿈꾼 대학과 너무 달라 자퇴도 결심했다.
“저는 화가보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꿈이었는데 수업방침이 제 생각과 맞지 않았어요.”
도피하고 싶어 군에 입대했고, 전역 후에도 복학보다는 학원에 목표를 뒀으나 부모님의 간청으로 대학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선배들과 대둔산으로 스케치를 따라갔다가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되는 사건을 겪게 된다.
모두 자신들이 스케치한 그림을 꺼내 보였는데, 왠지 다른 사람들과 비교될 정도로 느낌이 달랐다.
심지어 창피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단다. 그는 나름 욕심도 냈고, 잘 그렸다고 생각했다. 그때 선배가 던진 한 마디는 그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무너뜨렸다.
“‘너는 그림을 잘 그리는데 사물에 대한, 자연에 대한, 구도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한 것 같다’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들으니 ‘아 하!’금새 이해가 갔어요.”
다른 사람들의 그림은 많은 것을 표현하지 않았는데 정말 재미있었고, 느낌이 오는 반면, 자신은 잘 그렸는데도 뭔가 밋밋하다는 느낌이 왔다는 것. 그 일로 인해 나름 자존심에 상처도 받았지만, 자신만의 편견을 깨고, 더 넓고 깊이 한국화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됐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대학 졸업 후 2년 동안 부친이 경영하던 온천 한 켠에서 자그마한 커피숍을 경영하다 부친의 사업이 기울어지져 커피숍을 정리하고, 익산 배산에서 그림 작업에 전념했다.
배산에 머무는 동안 다양한 공모전에 참여해 상도 많이 받았다. 오롯이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완주와의 인연
지금의 아내와는 ‘지필묵연’이라는 대학 한국화 동아리에서 만나 전국으로 스케치를 다니며, 사랑을 키워오다 6년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34살 때다.
결혼 뒤에도 뚜렷한 직장이 없어 고민할 때쯤 지인의 소개로 봉동 시장 안에 아내와 함께 현미술학원을 개업했다.
학원은 2006년 1월에 열고, 이듬해 이사 왔으니 올해로 10년째 봉동에 살고 있는 셈이다.
학원을 운영하면서 여름에는 학원을 벗어나 고산천과 마그네다리에서 아이들과 물놀이도 하고, 운주 대둔산, 경천 화암사, 소양 송광사, 구이 대원사 등 완주 유명 사찰과 산에서 스케치도 함께하다보니 완주에 깊은 정(情)도 들게 됐다.
김성욱 작가에게 유일한 자랑거리는 자신이 그림을 많이 그려 전시회를 많이 여는 것보다 학원에서 만난 아이들이 대학에 가고, 대학에서도 모두 자신이 바랐던 한국화를 전공했다는 것이다. 무려 15명이나 된다고.
“학부모들이 저와 아내가 자신의 자녀들처럼 함께 즐겁게 놀아 주고, 스케치도 다니는 모습이 좋았고, 아이들에게도 저와 아내의 모습을 닮고 싶어서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 그림에 담은 완주 사랑
그가 완주에서 처음 스케치에 담은 것은 구이 모악산 대원사다.
대원사 화전축제에 아이들 15명을 데리고 벚꽃이 흩날리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스케치 한 뒤로, 천호성지, 화암사, 상관 기찻길 등 완주군의 명소를 아이들과 함께 그렸다.
“‘완주에 이렇게 예쁜 곳이 많구나!’감동하며, 완주군의 이야기를 많이 담고 싶었어요.”
완주의 스토리를 담은 작품이 늘어나는 만큼 완주에 대한 애정과 관심도 늘었다. 지난 2015년, 완주경찰서에 근무하는 선배로부터 ‘딱딱한 경찰서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벽화를 그려달라는 요청이 왔다.
재능기부로 아이들, 경찰서 직원, 청소년, 주민과 함께 2개월 동안 벽을 예쁘게 그림으로 채웠다.
또 ‘청양의 해’에 맞춰 ‘청양과 함께 꿈, 사랑, 동행’이라고 제목을 붙인 대형 벽화를 경찰서에 기증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봉동주민자치센터에서 한국화반을 3년 동안 지도했고, 현재는 봉동 코아루 아파트에서 한국화를 가르치는 등 주민들과의 만남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편안한 이웃처럼 느껴진다.
■ 꿈은 예술가 공간 조성
그는 선배와 함께 삼례 수계리에 쓰러져가는 빈 집을 임대한 뒤, 버려진 목재 등을 재활용해 주말농장을 만들었다. 텃밭을 일구고, 그림도 전시한다.
입소문을 타고 주말이면 많은 가족들이 놀러와 체험도 하고, 식사도 함께한다. 물론 무료다.
사실 김성욱 작가의 꿈은 완주에 예술가 마을을 만드는 거다.
굳이 마을이 아니어도 좋다. 대형 창고를 활용해 예술가들이 공동으로 생활하고, 그 속에서 작품을 만들고, 지역에 재능기부도 할 수 있으면 좋다.
“공간이 만들어 아이들이 체험하러 오고, 관광객도 늘고, 예술가들이 구경하기 위해 몰려 올 거라 생각해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 지역이 활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그림을 가르친 완주의 아이들이 다시 완주로 돌아와 함께 꿈을 펼치기를 소망하고 있다.
◆ 김성욱 작가는
원광대 미술대 한국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그간 개인전 13회, 국내외 단체전 및 초대전에 270여회 참여했다.
또한 대한민국미술대전(9회 입선)을 비롯 전북미술대전(특선4회), 전국춘향미술대전(특선3회), 아시아미술대전최우수상(특선3회), 전국한국화미술대전우수상 등 다수를 수상했다.
현재 원묵회, 500호파장회, 산채수묵회, 대한민국구상회, 동이회, 영드로잉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원광대와 삼례중, 상관중, 백운중에 출강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