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군에서 ‘딸기’하면 금 새 떠오르는 곳이 있다. 바로 ‘삼례’다. ‘삼례딸기’는 맛이 좋고, 당도가 높아 전국적으로도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그렇다면 삼례딸기의 시작은 언제였고, 또 누구의 의해서 시작됐을까? 주인공은 지난 12일 완주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제53회 완주군민의 날 시상식에서 자랑스런 완주군민대상(농림축산분야)을 수상한 서승완(79)어르신이다. 삼례읍 신금리 백두마을(이장 이승택, 개발위원장 이영구)에 사는 그는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삼례에 처음 딸기를 들여온 장본인이다. 그러니 어르신의 삶이 삼례딸기의 역사인 셈이다. ■ 벼농사에서 딸기농사로 앞서 소개한대로 서승완 어르신은 삼례딸기 농사 최초 보급 및 전국 브랜드화하는데 이바지하고, 농업인의 소득향상과 지역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으로 완주군민대상을 수상했다. 그는 모악산 자락 아래 전주 중인리가 고향이다. 군산 옥구에서도 살았다. 삼례에 터를 잡은 지는 지금으로부터 43년 전. 삼례로 시집온 누나의 소개로 이곳으로 이사 오게 됐단다. 서른 살에 같은 마을에 사는 지금의 아내 이옥자(74)여사를 만나 결혼, 현재 아들 셋을 두고 있다. 처음 호구지책으로 벼농사를 지었다. “당시 삼례는 해전리가 배추농사를 했고, 벼농사가 대부분이었어요. 특수작물은 없었죠.” 1977년 어느 날 딸기가 돈이 된다는 정보를 듣고,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 삼례에 딸기 최초 보급 “당시 전라도에는 딸기농사 짓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논산지역에서 많이 재배했어요.” 딸기 농사를 결심한 그는 시외버스를 타고 서둘러 논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딸기묘 300주를 집으로 가져왔다. 지금은 피식 웃으며 말하지만 당시 가져오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논산은 장화가 잘 빠지지 않을 정도로 황토 땅이 질퍽해서 딸기묘를 못자리에서 씻어내도 흙이 남아있어서 포대에서 황토물이 흘러나오다보니 버스기사가 심난해 보였던지 저를 태우지 않고 그냥 지나가 버렸어요.” 해는 저물어가고, 버스마다 승차를 거부해 안 되겠다 싶어 결국 택시라도 타겠다는 마음으로 마지막 한 대를 기다렸는데 다행히도 태워줘서 무사히 귀가 했다고. ■ 수막재배법으로 농가소득 기여 어렵게 가져온 딸기묘 300주를 처음 노지에 심었다. 딸기를 수확한 뒤에는 벼를 심는 방식으로 매년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경험이 없다보니 많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딸기는 물로 키우고 온도로 키우는 데요. 너무 추운 곳도 너무 더운 곳에서는 안 되죠. 밤에는 시설하우스라고 해도 6~7도, 낮에는 24~25도로 관리해야 가장 좋은 딸기가 나옵니다.” 딸기농사에서 중요한 것은 물과 온도라는 게 그의 설명. 온도를 맞추기 위해 난로도 사용해보고, 고랑에 물을 넣기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중 일본을 오가며 선진 딸기 재배법을 배우는 등 경남 진주에서 딸기 전문가로 통하는 김중길 원예연구박사를 찾아가 기술을 습득했다. 김 박사가 가르쳐준 신기술이 바로 지하수 물로 온도를 유지하는 ‘수막재배법’이었다. “수막이 나오면서 거적이 없어지고, 불을 땔 필요가 없어진 거죠.” 당시 딸기 주생산지였던 경남 진주도 밤에는 대형하우스에 터널을 씌우고 그 위에 무거운 거적으로 덮었다가 낮에는 걷어내는 방식으로 딸기를 재배했다가 수막재배의 보급으로 시스템이 다 바뀌었다. 김중길 박사로부터 수막재배법을 배운 서승완 어르신은 삼례농가에도 보급했는데, 이를 통해 겨울철 영농재해 예방은 물론 연료비용 감소를 통한 농가소득 향상에 많은 기여를 했다. ■ 딸기로 귀농인구 늘어 처음 딸기 농사를 짓던 해 수입은 어땠을까? 일단 판로 걱정은 없었단다. “당시만 해도 딸기가 귀해서 농사만 지으면 장사꾼들이 와서 서로 가져가려고 사정을 했어요. 저는 따 놓기만 하면 알아서 가져가다 보니 판매는 큰 걱정이 없었죠.” 돈도 제법 모았다. 딸기가 돈이 된다는 소문이 퍼지자 삼례 들판은 벼 대신 딸기밭으로 물들어갔다. 사실 딸기가 보급되기 전 삼례는 대한민국양봉협회 본부가 위치해 있을 정도로 양봉으로 유명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딸기농사가 점점 확산되자 양봉을 했던 주민들도 전업하기 시작해 오늘날 삼례는 양봉에서 딸기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재배 면적이 늘면서 삼례에서 딸기를 주업으로 귀농하는 사람들도 증가하는 변화도 일었다. 이제는 2세가 물려받아 삼례 딸기의 대(代)를 잇고 있단다. ■ 삼례는 딸기 재배 최적지 서승완 어르신의 ‘삼례딸기 예찬’은 대단하다. “제가 서울 가락동시장도 가보고, 청주 공판장, 대한민국 어디를 다 돌아다녀 봐도 우리 삼례지역이 최고라는 걸 느꼈어요.” 삼례는 논산이나 양촌과 달리 배수가 잘 될 정도로 땅이 좋고,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지하수로 보온을 다 할 만큼 물이 좋다는 게 어르신의 설명이다. 이처럼 좋은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삼례딸기는 여느 지역 보다 맛이 좋고, 당도가 높다는 게 큰 강점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 진인사 대천명, 욕심은 금물 딸기 재배를 처음 시작한 뒤, 40년 동안 농사지으면서 울고, 웃었던 기억들이 인터뷰를 통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는 서승완 어르신. 갑작스런 돌풍이 불어 비닐이 찢어지고 철재 하우스 4동이 다 뽑혀서 하늘로 날아가 버린 아찔했던 순간, 겨울에 폭설이 내려 하우스가 주저앉아 농사를 망쳤던 일들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농사가 실패하면 좀 덜 먹으면 되는 거죠. 저는 농사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아요. 이것도 내복이고 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욕심은 부리지 않죠. 내가 정성껏 농사지어서 많은 수입이 있든, 없든 내 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망은 하지 않아요. 지금까지 딸기 농사지으면서 정부 보조 받지 않고 없으면 없는 대로, 내 힘대로 살았지, 남에게 의탁하는 것, 좋아하지 않아요.” ■ 가슴속에 간직했던 말 40년 동안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심정으로 ‘딸기’만 바라보며 오롯이 한 길을 걸어온 서승완 어르신. 가슴속에 간직해온, 하고 싶었던 속내를 털어놨다. “인건비는 오르고, 반면 수입은 줄고 있는 실정인데요. 이제 수출하지 않고는 힘듭니다.” 경남 진주의 경우, 지역의 기관장들이 많은 관심과 노력으로 15년 전부터 일본에 딸기를 수출했다는 것. 완주군도 군수나 군의원, 도의원, 국회의원이 나서서 농가의 문제를 해결해주길 당부했다. 또한 농업기술센터 역시 과거 농촌지도소에서 위상이 격상한 만큼 농가에 기술을 보급하는 센터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주길 희망했다. “월급만 타는 게 아니라 농민보다 한 걸음 더 앞서서 우리 농민이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는 지 고민하고, 발 빠르게 정보를 입수해서 농민에게 기술을 보급해 완주농민이 고민하지 않고 잘 살 수 있도록 노력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최종편집: 2025-08-11 01: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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