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3일 구이면 구이제(九耳堤)와 모악산 일원에 벚꽃이 만발하자 노 부부는 구경을 나갔으나 부인(가명 유정분)은 허리가 나빠 남편(가명 하상용)이 손을 잡아줘야 하는 형편. 이런 일이야 흔히 보는 광경이다. 노 부부는 마침 구이제 수문 앞 노천(露天) 의자에 앉아 쉬는데 같은 또래의 여인(가명 고덕심)이 다가와 곁에 앉으며 “심히 부럽습니다.”라고 한다. 오가는 이야기 가운데 재차 “대단히 부럽습니다.”라며 양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노 부부는 “80넘은 나이…‘노추(老秋)’인데요.”하니 여인은 “전 ‘청춘’도 ‘노추’도 없이 살아갑니다.” 허리 아픈 유정분이 “그러실 분 같지 않은데요” 이러자 “팔자 기박하니 ‘청춘’에 대비되는 ‘노추’ 역시 있을 수 있나요” 바람결에 흩날리는 꽃잎을 가리키며 “저는 저렇습니다.”고 한다. 부부는 “누구나 늙으면 그런 게 아닙니까.”하니 고덕심은 눈가에 눈물을 적시며 “전 고산 읍내리에서 열여덟 살 시집갈 때까지 담 밖에 거의 나가지 못했고 남편은 결혼하자마자 6·25전쟁 때 죽어 ‘청춘’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이어지는 유정분의 질문 “밖에 나가지 못했다니요?” 고덕심은 “거짓말 같지요? 고산은 물이 좋아 똘 물을 담 안으로 끌어들여 돌아나가게 해 채소를 씻고 빨래하며 여름엔 목욕까지 할 수 있는 공간구조에 부모님이 워낙 엄하셔서 문 밖 출입을 말렸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전화번호를 적어 서로 바꿔 들고 헤어졌다. 1주 후 고덕심의 초청을 받은 부부는 ‘노추’를 모른다는 여인 집에 갔다. 아담하게 잘 꾸미고 산다. 갈비, 젓갈, 곰탕 밥상이 푸짐해 잘 먹었고, 집에 돌아온 유정분은 며칠 후 고덕심을 모셨다. 이런 자리를 자주 갖다보니 하상용은 두 여인 사이에서 꿈같은 좋은 대접을 받으며 지낸다. 결국 세 사람은 공원 산책, 외식, 바닷가 나들이도 함께 했다. 고덕심과 하상용의 대화는 날로 두터워졌다. 하루는 고덕심이 유정분에게 “남편 손을 한 번 잡아 봐도 되냐?”고 묻는다. 부인은 쾌히 허락하며 얼른 양인의 손을 덥석 잡혀주었다. 고덕심은 남편과 사별한 후 62년 만에 처음 잡아보는 남자 손길이란다. 가슴이 떨린다. 수줍은 중에 부인이 고맙다. 약속한 날이 기다려진다. 노추를 찾아 준 유정분 부인이 대단해 보인다. 언니라는 말이 절로 나오며 허리가 아프다니 돕고만 싶다. 만날수록 다정해져 세 사람은 한집 식구 같은 기분이었다. 외로운 여인의 노추를 찾아 줬다. 남자는 여인의 머리에 꽃을 꽂아주며 팔짱을 끼고 걷기도 한다. 5월 21일은 부부의 날로 선의의 교제 이상한 일이 아니다. 늙으면 살기 싫다는 소리 나올 때가 있다. 숨 쉴 때 즐겨라.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
최종편집: 2025-06-24 13:39:31
최신뉴스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오늘 주간 월간
제호 : 완주전주신문본사 :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봉동읍 봉동동서로 48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전라북도, 다01289 등록(발행)일자 : 신문:2012.5.16.
발행인 : 김학백 편집인 : 원제연 청소년보호책임자 : 원제연청탁방지담당관 : 원제연(010-5655-2350)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김학백
Tel : 063-263-3338e-mail : wjgm@hanmail.net
Copyright 완주전주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