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장신대학교는 4년제 사립대학으로, 완주군 상관면(신리 694-1)에 소재하고 있다.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밝히는 인재를 집중 양성해온 지 자그마치 올해로 95주년을 맞았다.
의미 있는 학교 설립 100주년을 목전에 두고 있는 한일장신대학교의 비전, 그리고 지역의 대학으로서의 사명과 역할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기 위해 지난 해 11월 제6대 총장으로 취임한 구춘서 총장(60)을 만나 인터뷰를 나눴다.
■ 완주군민에게 인사말씀
먼저 박성일 군수님을 비롯한 완주군민 모두 행복하고, 복된 삶이 이어지길 기도드린다.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 대학이 완주군에 소재하고 있는 만큼,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린다.
저희 대학에 맡겨주신 교육적인 사명을 잘 감당해서 완주군에 필요한 인재들을 양성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 대학을 소개해 주신다면
두 가지로 말씀드리고 싶다. 먼저 우리 대학은 95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설립자이자 조선인들의 어머니라 칭했던 서서평 선교사는 시대정신을 바꾼 분이라고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다.
조선 말, 일제시대 한센병(문둥병)환자가 소외를 받았지만 그들에게 다가가 옷을 입혀주고 음식을 사주는 등 많은 도움을 줬다.
지금의 간호사의 역할을 했지만 당시 가장 천한 직업으로 여겼던 의녀를 오늘 날 전문직으로서 존경받는, 그리고 고상하고 아름다운 직업인 간호사로 바꿔놓는 시대적 변화를 가져다준 분이다.
또한 간호사협회를 만들고, 해외에 등록시킨 분이다. 그분은 ‘성공이 아닌 섬김이다(Not success but service)’라는 말을 남겼다. 그런 정신이 살아있는 학교다.
또 하나는 우리 대학의 옛 이름인 한예정성서신학원를 세운 고인해 선교사 이야기다.
그분은 연세대, 이화여대와 같이 큰 대학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제시대 수탈이 심했던 호남지역, 거기에다 교육으로부터 소외된 여성들을 훈련시키자라는 정신으로 학교를 이끌었다. 그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자랑스런 학교다.
또한 학과 모두 사람과 사회를 섬기는 것들로 이뤄졌으며, 교수들 역시 어디다 내놓아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
예를 들자면 많은 연구성과를 통해 한국연구재단에서 받아오는 연구비율이 월등히 높다.
물론 저서도 많이 내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 대학은 학교 내 구성원들 간 끈끈한 사랑, 우리가 키워내려 했던 학문적 수월성 등을 강점으로 꼽을 수 있다.
■ 학과 특징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우리 대학은 설립자 서서평 선교사와 고인해 선교사의 시대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병자들을 돌보는 간호학과를 지난 2014년 신설했다.
또 복잡하고 다양해지는 현대에 일어나는 가족 간의 문제, 게임중독 등을 치료하기 위해 심리상담학부, 전문적 예술인을 육성하기 위한 음악학부, 모든 학문의 원천이 되는 기초 순수학문을 연구하는 인문사회과학부, 그리고 호남지역에서 가장 먼저 개설된 사회복지학부가 있다.
그리고 1922년 개교 이래 신앙적 인격과 학문적 지성을 겸비한 인재를 양성해 지역사회와 교회의 지도자를 배출해온 신학부가 우리 대학 학과에 포함돼 있다.
앞서 설명했지만 모든 학과가 사회를 섬기는 것들로 이뤄져 있다는 점이 우리 대학 학과의 특징이다.
■ 대학 경영 목표는 무엇인지
무엇보다 재정적 안정이 중요한데, 우리 대학의 경우 빚이 없다. 재정자립도가 건실하다는 뜻이다.
이 기반위에 학문적 수월성과 연구물, 그리고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들어 잘 훈련받고, 지역에서 봉사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 대학운영에 초점을 두고 있다.
지역을 섬기고, 지역에 있는 교회를 섬기고, 지역에 있는 주민들을 섬기는 것이 대학 경영의 중요한 목표라 하겠다.
■ 임기 내 이루고 싶은 일
타 대학 학생들과 다르게 우리 대학 학생들은 4년 동안 치열한 경쟁이 아닌 정말 행복하게 공부하는 경험을 하고, 경험을 통해 자기가 몸담은 조직을 변화시키는 그러한 훌륭한 인재들로 키우고 싶다.
반드시 이뤄내고 싶다. 자화자찬 같지만 지난 5개월 동안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는 것을 느낀다.
우리 대학은 연세대나 이화여대 등 규모를 갖춘 기독교 대학을 모델로 하지 않는다. 예수님, 서서평선교사처럼 자신보다 남을 더 사랑하는 작지만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대학임을 강조한다.
나는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학교의 대표는 학생이라고. 그 다음은 직원, 교수, 교무위원, 총장이다.
총장이 한일장신대 자랑하는 것은 의미 없다. 학생들이 소중하게 여기고, 이들의 학부모와 친구들의 입에서 소문이 나 찾아오고 싶은 학교를 만들고 싶다. 큰 대학이면 힘들다. 작은 대학이기 때문에 이룰 수 있을 거다.
■ 대학의 지역사회 역할은
대학이 지역사회에 녹아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관심과 실천이다.
예를 들면 소양한지 마을을 숙소로 이용한다든지, 새참수레에서 세미나 등 행사를 개최하고, 로컬푸드에서 농산물을 구입하고...나 뿐 아니라 대학의 구성원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가져야한다.
완주군이 잘돼야 우리 학교도 잘된다는 공동체적인 의식이 필요하다. 완주군은 로컬푸드, 아동친화도시 등 좋은 정책들을 만들어 전국적으로 소문이 많이 나있다.
우리대학 교수들도 완주군과 완주군의회에 자문 역할도 하고, 앞선 지식을 보태 정책결정, 평가에 참여했으면 한다.
그러한 경험이 학생들에게 전수가 돼 지역에 필요한 맞춤형 인재를 길러내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우리대학은 지난해부터 완주군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완주군으로부터 위탁 운영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완주군과 한일장신대학교가 상생협력 관계를 공고히 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
■ 구춘서 총장은 누구
구 총장은 거제도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서울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그는 번듯한 회사를 경영하는 CEO를 꿈꾸면서 (주)대우실업에서 2년 동안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회사보다 교회 일에 관심이 많아 결국 가난하고 힘들지만 부친을 따라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부모의 도움 없이 혼자 과외를 하면서 학비를 벌어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 유학비용도 마련했다.
1986년 2월 장로회 신학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1986년 신학교수를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톤신학교, 뉴욕 유니온 신학교에서 각각 신학석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뉴욕유니온신학교 튜터, 뉴욕신학교 겸임교수를 지냈고, 미국 장로교 선한목자교회와 믿음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재직했다.
또한 미국 장로교 동북대회의 인종문제위원회 회원, 미국장로교 뉴욕시노회 한국목회위원장, 총회 미자립교회 대책위원회 및 목회전략개발위원회 전문위원,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전문위원을 역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1997년 한일장신대학이 목회자 양성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교수 요원이 필요함에 따라 당시 총장의 권유로 한국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대학에 몸담고 있다.
그간 신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기획개발처장, 대학원장, 아시아태평양국제신학대학원장, 경건실천처장을 거쳐 지난 해 11월 6일 제6대 총장에 취임했다.
구 총장은 미국 가기전인 1986년 학교 캠퍼스에서 아내 구본순 여사를 만나 결혼에 골인, 현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한나와 사라, 두 딸을 두고 있다.
주변에 어려운 사람을 도와줄 때 시간도 내야하고, 물질도 써야하고,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좋은 일 했다’라는 마음의 뿌듯함을 느낄 때가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하는 구춘서 총장.
그런 고상한 목표가 바로 행복이란다. ‘부자되세요!’라고 말하고, ‘부자됐다’고 해서 행복한 게 아니라는 구 총장의 말을 곱씹으며, 그의 좌우명이라는 성경 마태복음 20장 28절 말씀을 소개하는 것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친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the son of man did not come to be served, but to ser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