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군 사회복지사들에게 ‘인기남’으로 통하는 사람이 있다. 아니 인기 정도가 아닌 ‘대세남’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바로 완주군장애인복지관 육주일 관장(43)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가수 뺨치는 노래 실력에다, 늘 행사장을 웃음바다로 만드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다. 때문에 완주군사회복지와 관련된 행사의 사회는 유명 MC가 아닌 육 관장의 몫이 된다.
재치 있는 입담, 노래, 악기연주, 운동, 일,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을 만큼 많은 매력을 가진 육주일 관장을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2주일 앞둔 지난 3일 만나 인터뷰를 나눴다.
■16년 동안 16개 직업, 직업의 달인
육주일 관장은 용진이 고향이다. 평범한 농부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신 부모님을 따라 주일이면 늘 교회로 향했다. 학생·청년회장, 지휘자까지 맡는 등 교회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때문에 주위사람들은 그에게 ‘목사’, ‘종교지도자’를 권하기도 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광대학교 법학과 4학년 때, 성악을 전공한 8살 연상인 지금의 아내 박영란씨를 만나 2년 연애 후 결혼에 골인했다. 군대에서 드럼을 배우는 등 악기 다루는 것을 좋아한 그는 싱어인 아내와 함께 대학 찬양밴드에서 공연활동을 하며, 연인으로 발전했고,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게 됐단다.
대학생 신분이지만 가장으로서 책임을 져야 했기에 일찍 취업했다. 생활정보지를 보고 무작정 제과회사에 들어갔다. 첫 직장이었다.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슈퍼를 돌며 아이스크림을 납품했다. “여름에는 쉴 틈이 없어 차 안에서 김밥 한 줄 먹으며 일 했어요.”이어 음료회사 영업사원으로 1년 근무했다.
뿐만 아니다. 전북대 인근 식당 운영도 해봤고, 보험회사, 녹즙배달, 대리운전, 슈퍼 등 16년 동안 16개 직업을 경험했다.
육 관장은 자신을 개그콘서트 ‘달인’ 코너로 유명한 개그만 김병만을 본 따 ‘직업의 달인, 사표 육주일 선생’이라 칭했다. 많은 회사에 다니며 사표를 많이 썼다는 뜻이란다.
■완주군 장애인 복지관, 새로운 도전
복지관에 오기 전 전주대학교에서 학생 취업상담, YWCA 경력단절 여성 취업상담, 노인 일자리 관련 일도 했다. 물론 사회복지사와 직업상담사라는 자격을 갖고 있어 가능했다.
이후 지난 2012년 4월 1일 완주군장애인복지관과 인연을 맺고, 사무국장을 맡게 됐다.
“사실 고민도 많았어요. 장애인 분야는 경험이 많지 않아서요.”
그가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는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과 관련된 일’ 이라 생각했기 때문.
무엇보다 그동안 많은 직업 속에 만난 사람들과 신뢰를 쌓는 과정을 몸소 경험했기에 자신감이 생겼다.
“제가 중간관리자나 관리자로서 역할을 하는데 밑에 있는 직원들, 이용하는 장애인들, 윗분들에 대한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어요. 결국 제가 잘 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죠.”
육 관장은 많은 사회생활을 하며 ‘내가 이것 하려고 대학 나왔나?’수없이 후회와 좌절을 했지만,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지나고 나니 다 의미가 있더라고요. 내가 미래에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과거는 좋은 자양분,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관장으로 3년, 사명 깨닫다
2014년 4월, 사무국장에서 관장으로 취임했다.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복지관 운영에 누가 되고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라는 우려와 고민도 했지만, 아내의 조언 덕분에 힘을 얻었다.
“아내는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겸손하고, 장애인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직원들과 소통함에 있어 많이 들어주라’고 당부했어요.”
취임 후 3년이 흘렀다. 그간 자신의 복지관 운영 점수를 물었더니 75점을 줬다.
점수를 말하면서 복지관장으로서 사명에 대해 얘기를 이어갔다.
“완주군 8천여 장애인이 차별과 소외 없이 서비스를 받게 하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성장시키고, 모두가 기관운영에 공감하며, 소통하는 것이 곧 복지관장으로서 사명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유형과 지역으로 분리해 설명했다. 먼저 유형의 차별은 지적장애인의 경우 인지 능력이 부족하다고 적당히 들어주고, 지체장애인들의 목소리는 잘 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지역적 차별은 복지관이 봉동에 있어 인근 지역 장애인들만 혜택을 누리고, 상관이나 구이, 고산6개면 장애인들은 받지 못한다는 것.
육관장은 이러한 유형과 지역적 차별을 없애기 위해 명확한 지침운영과 함께 찾아가는 서비스를 해법으로 제시, 향후 사업들을 실행에 옮길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복지관장으로서의 사명 가운데 ‘일하는 동료들의 성장’을 위해 질 좋은 직원교육, 여름 휴강기 역량강화 시간 마련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일률적으로 함께 성장하고 그로인해 서비스 질이 좋아지죠. 장애인들이 복지관에 왔는데 어떤 직원은 서비스가 좋고, 어떤 직원은 서비스가 나쁘면 안 됩니다. 질적 수준의 평준화가 돼있어야 높은 수준의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결국 육 관장은 높은 수준의 서비스는 직원교육에서 나온다고 판단, 시설장과 기관장의 적극적인 투자와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복지관 중점사업 역점 추진
완주군장애인복지관의 프로그램은 단위사업만을 따져도 각 팀에서 하는 사업이 보통 30여개가 넘는 것을 감안하면 1년에 약 100여개 운영된다.
이 가운데 장애인과 어르신들에 대한 인권증진사업,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마을조직화 사업, 그리고 장애인청소년들에 대한 전환교육 등 3가지를 중점사업으로 꼽았다.
인권증진사업의 경우, 장애인인권정보지원센터 운영을, 마을조직화 사업을 위해 마을이장과 부녀회장과 연계, 함께 장애인의 불편함을 덜어주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장애인청소년 전환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장애 청소년들의 직업체험, 경제활동, 진학 등을 추진하고 있다.
■진정한 복지는 물어보는 것
“저는 복지를 한마디로 ‘물어 보는 것’, ‘여쭤 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육관장의 복지에 대한 지론이다. 장애인들에게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줄 테니 받아라’라는 식의 서비스는 제대로 된 복지가 아니가 아니라는 것. 예를 들면 밑반찬 하나 지원하는 경우, 식당의 복지사가 정하고, 장애인들은 때가 되면 와서 먹으라는 식이다.
“장애인들이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욕구조사 등을 통해 필요한 반찬을 만들어 주는 것도 중요하죠. 자꾸 물어보고 의견이 정책에 반영돼야 그것이 소통이 아닐까요?”
그는 ‘복지관을 운영할 때 직원들과 장애인들이 많은 공감을 가진 육주일 관장’으로 남고 싶다고 얘기 했다.
■완주군사회복지사협회 준비위원장 추대
육 관장은 최근 완주군사회복지사협회 준비위원장으로 추대됐다. 그동안에는 전주와 완주가 통합돼 있었는데, 총회를 통해 분리를 결정했단다.
중책을 맡은 육 관장이 준비 과정을 이끌어야 한다. 육 관장은 완주군의 사회복지사에 대한 관심은 높다고 했다. 한 예로 해외연수, 예산지원 등을 꼽을 수 있다고.
이런 밑바탕에서 앞으로 완주군사회복지사협회의 정책을 만드는 초석을 다져볼 계획도 세웠다. 덧붙여 지속적인 모임속에서 좋은 의견, 바른 정책을 만들어 씽크탱크 역할을 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고 싶다
육 관장은 인터뷰 말미에 복지관 운영 법인인 완주군장애인연합회 장현구 회장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장애인연합회 슬로건이 ‘다함께 다같이’인데요. 장 회장님은 장애인들을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회원이 아닌 가족이라고 얘기합니다. 장애인 가족분이 자그마한 불편을 겪으셨다고 얘기 들으면 당신 일처럼 달려가 해결하려 하죠.”
육 관장은 장회장에 대한 감사의 말과 함께 앞으로도 이런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아빠로서 아들 준행(중3), 딸 소리(중2)에게도 한 마디 건넸다.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고 후회하지 않는 우리 아이들이 되길 기도 합니다.”
육주일 관장과 한 시간이 넘는 긴 인터뷰를 나눴다. ‘내가 꿈을 이루면 다른 누군가의 꿈이 된다’라는 그의 좌우명처럼, 훗날 목표를 이룬 육관장의 모습이 많은 이들의 꿈이 되고 롤모델이 되길 소망한다.
그가 들려준 울림 있고, 기억에 남는 메시지를 정리하는 것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친다.
“장애인도 일반인과 똑같은 사람이에요. 행복한 권리를 가지고 있죠. 시내 나가 팝콘을 사고 좌석에 앉아 영화 보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습니다. 편견 없이, 차별없이 그들을 바라봤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