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에 이런 건물이 있어 다행이다. 고산면 소향리에 세운 의미가 더욱 크다.
이 자리는 17세기 운암사(雲岩寺) 자리이다(구치용 시). 1914년 고산군이 일제에 의해 전주부와 통합되어 사라졌다가 1935년 완주군으로 분립됐지만 당해 기관이나 학교는 모두 전주에만 있어 괴이한 군으로 군민은 마치 더부살이 꼴이나 다름 없었다.
이런 현상으로 70∼80년이 흘러서야 군의 정체성(正體性)을 찾기 시작해 ‘완주전통문화체험관(完州傳統文化體驗館)’이 들어섰고, 2016년 말 완주문화원(원장:이행구)에서 『완주인물(完州人物:440면)』을 펼쳐내니 “이 분이 우리 완주인(完州人)이냐!”…놀라는 한편 태도 변화가 오기 시작한다.
사람 존경에 지역이 따로 있을 수야 없지만 사실을 사실대로 알아 다행이란다. 사람 경모(敬慕)에 신분을 따질 필요가 어찌 있으랴. 독자의 환심이 모아지면서 ‘완주전통문화체험관’을 주목한다.
위의 책 제4부 ‘예맥 뿌리를 찾아서 편’에 창암 이삼만(총 9면) 이야기가 자세하다. 이용엽, 김진돈, 이존한 고 이세환이 오래 동안 깊이 연구한 인물로 ‘북부에 조광진(부벽루 서자)’, ‘중부에 김정희(추사체)’, ‘남부에 이삼만’ 3대 명필 중의 한 분이다.
이에 대한 학위 논문과 선양회가 있어 도민의 환심이 높아진다. 이런 일에 전문가와 아마추어를 나눌 필요가 없다. 사람 존경은 인지상정. 즐거운 비명이라면 이삼만의 연고지가 전주·완주에 겹쳐지는데 엄밀히 따지면 완주 쪽에 더 가까운 편이다.
이러므로 우리 완주가 주체 의식을 가져보자는 밝은 의견이 솔솔 피어오름은 인물 쟁탈전(?)이 아니라 치하 받을 식견이라고 본다.
△고창 신재효 △군산 채만식 △장수 논개 △남원 춘향 △김제 현숙 △진안 여태명 △임실 소충제 △옥천 정지용 △개실 김일손 △홍성 한용운 △단양 정도전 △보성 서재필 △산청 허준 △고령 우륵 △충주 탄금대 △전주 송성용…을 흉내 내자는 게 아니라 기위 소향리에 쓸모 있는 ‘완주전통문화체험관’을 세웠으니 글씨, 노래, 춤, 놀이, 혼례, 제사, 동상례, 백일장, 과거시험 등등의 시연(試演)을 통하여 고시(考試)파 문관이 다스리는 호군(豪郡)으로 우뚝 세워보자는 제언이다.
일반 백성은 모방과 체험에서 진리를 터득한다. ‘아니 해 본 흉내는 내지도 못한다.’는 속담이 있다. 완주전통문화체험관 자리는 안목을 지닌 분이 잡은 대단한 터다. 터 값을 해야 한다.
이 일에는 완주문화재단 서예가 권창환 이사, 완주문화원 이행구 원장, 전 완주문화원 김진돈 사무국장 제씨가 앞장을 서고 민간인의 열정을 관계 당국이 공감만 해주면 완주전통문화체험관이 ‘완주학(完州學)-고산학(高山學)’을 녹여내는 큰 도가니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믿는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