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년 닭띠 해, 첫 특집으로 자랑스런 완주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주인공은 고산면 율곡리가 고향인 우정 이존한 화백(73). 1945년 8월생으로 닭띠다. 교정직 공무원에서 인생 2막을 화가로 40여 년 활동해오고 있는 이 화백의 삶을 들여다보면 많은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 내 고향은 율곡리 밤나무골 이존한 화백은 고산면 율곡리 출신으로,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동네 이름이 밤 ‘율(栗)자’를 따 율곡리라 할 만큼 지천에 밤나무가 널려있었다. 유년시절, 떨어진 밤알을 줍기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 밤알을 줍고, 학창시절에는 산에서 갈퀴나무를 묶어 지게에 짊어지고, 봉동시장에 팔러 나가 몇 푼 받은 돈으로 배고픔을 견뎌내야 했다.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일상을 가난과 맞서 싸워야 했고, 시골이 싫어 무작정 서울로 가출한 적도 있다. 이 화백의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은 눈물로 몇날며칠 밤을 새워도 모자란다. ■ 공무원의 꿈을 이루다 1973년 어릴 적 꿈인 공무원에 임용, 대전교도소에서 교정직 공무원으로 사회 첫 발을 내딛었다. 2년 뒤, 전주로 내려와 근무한 다음, 대구에서 1년, 교감 승진 후 군산교도소에서 정년을 마쳤다. 특히 근무 당시 그는 까다로운 심사과정을 통과, 교정직의 가장 큰 상이자 꿈인 ‘교정대상’을 받는 영예와 함께 김대중 대통령의 초청으로 아내 이주옥(66)씨와 청와대 영빈관에서 식사를 나누기도 했다. ■ 화가로 인생 2막 열다 그는 교정직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정년 후의 삶에 대해 고민했다. 30년 뒤를 내다보고 고심한 끝에 한국화를 선택했다. 그길로 당시 벽강 유창희 원광대 한국화과 교수가 운영하는 학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웠다. 낮에는 직장에서 밤에는 학원으로, 야근 한 다음 날 달콤한 휴식도 반납한 채 화실로 달려가 망설임 없이 붓을 잡았다. ■ 그림에 대한 집념과 열정 이화백의 그림에 대한 집념과 열정은 대단했다. 그가 학원에 들어가기 전 실제 경험담이다. 갑자기 세상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하얗게 보이는 현상이 두 시간씩 서너 차례 반복되면서 실명의 공포를 느꼈다. 그는 하얀 화선지에 오래 집중해서 생겼다고 추측할 뿐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고 말했다. 또 매일 늦게까지 그림을 그리다보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 아침에 코피를 쏟은 적도 다반사였다. 뿐만 아니라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 카렌다에 담겨진 유명 작가의 그림을 보고 따라 연습하기도 했다. ■ 마침내 화가로 인정받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고 명언이 있듯 그의 땀과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국전이 폐지된 이후, 1986년 국내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제5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그는 당당히 입선했다. 우리 지역에서도 기라성 같은 작가들도 출품하지만 입선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웠던 터라 당시 그의 입선은 전북 미술계에 큰 화제를 뿌렸다. 이후에도 다수의 공모전에 참가, 많은 상을 휩쓸면서 그의 존재를 화단에 알렸다. 또한 초대전과 단체전, 개인전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통해 작가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굳혔다. 고향과 한국의 아름다운 풍경 등 그의 땀과 열정이 고스란히 배인 작품들은 법무부와 검찰연수원을 비롯하여 교정연수원, 전북대, 35사단, 완주군청, 완주문화원, 고산초등학교, 전주교도소, 대자인병원 등에도 소장돼 있다. ■ 이 화백이 존경받는 이유 공무원 퇴직 후 그는 사회의 그늘진 곳을 찾아 베풂과 나눔을 실천하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실제 한국미협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 화백은 무인무의탁 재소자를 돕기 위해 작가들로부터 작품을 기부 받아 판매한 수익금 2천 여 만원을 교화방송 시설을 교체하는 데 흔쾌히 기탁했다. 또 불우이웃돕기, 영치금 지원 등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전직 완주군수 출신 및 관료들로 구성된 ‘보람회(회장 전 임명환 완주군수)’라는 조찬모임을 통해 모은 성금으로 고산에 소재한 국제재활원, 전주교도소 등 사회소외 계층을 돕는 일들을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있어 귀감이 되고 있다. 이밖에도 대한민국 재향 교정동우회 전주지회장, 창암 이삼만선생 선양회 전국서화백일휘호대상전 운영위원 이사, 전주향교 지역위원장 및 장의, 한국미술협회·한국전업작가회·사대문화·자명회 회원 등 다양한 활동으로 지역사회 작은 밀알이 되고 있다. ■ 전국1호 교정박물관 짓고 싶다 이존한 화백은 그림, 수필, 투고 등 자신의 인생이 담긴 작품들과 가족사진들을 모아 책을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 또 창암 이삼만 휘호대전을 완주군에서 꼭 열고 싶은 꿈도 갖고 있는데 긍정적인 답변을 이끌어내 머지않아 이뤄질 것이란다. 특히 그가 교정직 공무원에 근무하면서 보물 1호처럼 여기며 창간호부터 현재까지 모으고 있는 ‘교정지’와 중국 상해교도소에서 선물로 받았던 넥타이 핀, 월급봉투, 수용자가 쓰던 밥그릇과 피복 등을 한 곳에 모은 전국 1호 교정박물관도 계획하고 있다. 이외에도 고산향공동체에서 교육문화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세미나를 통해 고산의 랜드마크는 물이라고 제안, 그가 발표한 ‘물빛소리’가 선정돼 지금도 고산면주민자치센터에서 발행하는 소식지의 제목은 ‘물빛소리 고산이야기’이라고 붙여질 만큼 애향심도 남다르다. 이 화백이 제안한 물빛소리에는 고산 이천 물줄기가 세심정을 거쳐 군산, 장항까지 흘러 주민들의 식수는 물론, 농·공업용수로 활용되는 만큼 물에 대한 연구를 통해 고산을 관광지로 만들자는 게 주요 골자다. ■ 앞으로의 삶은 베품과 나눔으로 이존한 화백의 호는 ‘우정(又亭)’이다. 지인이 만들어줬다. 한자로 ‘또 우(又)자’에 ‘정자 정(亭)자’다. 정자는 쉬는 곳이다. 낮잠을 자고, 농사철 일하다 밥을 먹기도 하고, 비올 때 잠시 쉬어가기도 한다. 정자가 모자라면 그 위에 또 하나 짓고...정자가 많을수록 많은 사람이 쉴 수 있다. ‘우정(又亭)’이란 호는 그가 살아온 삶처럼 베품과 나눔이 담겨있다. 많은 활동때문에 잠시 붓을 놓았다는 이 화백. 이제 다시 붓을 잡으려 하니 몹시 설렌다는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친다. “내 고향 밤나무 숲이 아름답게 우거져 밤꽃 향기에 벌과 나비는 물론 지나는 새들도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 새끼를 부화하는 보금자리가 되길 바라면서 미래를 위해 오늘도 내일도 디딤돌 하나하나씩 쌓아가는 심정으로 붓을 잡고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최종편집: 2025-08-11 01:14:25
최신뉴스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오늘 주간 월간
제호 : 완주전주신문본사 :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봉동읍 봉동동서로 48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전라북도, 다01289 등록(발행)일자 : 신문:2012.5.16.
발행인 : 김학백 편집인 : 원제연 청소년보호책임자 : 원제연청탁방지담당관 : 원제연(010-5655-2350)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김학백
Tel : 063-263-3338e-mail : wjgm@hanmail.net
Copyright 완주전주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