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농리는 비봉면소재지다. 학교, 파출소, 농협지부, 보건지소, 우체국, 교회당, 음식점 등 찾기 쉬우며 전에는 주조장도 있어 이야기 거리가 많다. 주조장 주인 유준상은 해방 후 면장을 했고 1948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 2년간 국기(國基)를 다듬었다. 그 아들 희택은 서울대학교 경제과를 졸업 나웅배 부총리와 동창이며 중학교 교장을 했고, 작은 아들 명월 희창은 중앙대학교을 나와 한때 교편을 잡았으며 비봉농협장과 통일주체대의원을 했고 근래는 아버지 추모비를 장승공원에 세웠으며 지금은 고흥유씨 참의공종중회장으로 활약한다. 사람 수로는 담양국씨가 많으나 정치와 선거 수완은 고흥유씨가 앞서간다. 그도 그럴 것이 한말 ‘일문구의사(一門九義士)’가 나온 집안이라 일제 탄압도 받았지만 시련을 많이 겪어 연단된 경륜이 있다. 유종상 유희빈 소병래가 도의원을 했는데 모두 소농리 출신이다. 솔티재 너머에 백제예술대학교가 있다. 여기에 착안 학생 상대 숙박시설 ‘원룸’을 지어 재미 보는 마을이다. 자연부락 신복-문장-원소농-평치마을을 비롯하여 주민들 공론이 ‘담양국씨와 고흥유씨를 능가하기 어려우니 제3세력을 키워야한다.’며 ‘전주이씨화수회’가 생겨 묘한 구조로 발전하는 부락(면)이다. 범바위를 깨야 비가 내린다며 익산군민의 해꼬지가 있었다. 파출소장의 명담. “경찰관 편하려면 소농리 근무가 최고란다.” 주민 밥 먹으며 수박, 상추밭 비닐하우스 속에 죄다 들어가 사건 사고가 나지 않아 편하기가 제 집에서 노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게다. 500원 택시까지 생겨 한의원과 찜질방 나들이가 편해지자 박성일 군수 인기가 자꾸 높아진다. 유윤상 고인의 별명이 ‘정월초하루’. 20대 면장에 이어 교육위원을 젊어서 했다. 장작 장사를 하는데 ‘세어 가라’는 정도로 후한 인물이었다. 이런 인물의 고장 소농리 몇몇 정치인은 민주당에서 국민의당으로 당적을 재빠르게 옮겼다. 30년 전 유윤상 님 회갑잔치(1986년 4월 12일) 때의 시이다. 연말이라 생각이 난다. ◆‘높은 절벽 기어오름’ 달실[月谷] 자리 좋아/ 명현 잠 든 터/ 이마에 앞산이 닿는다./ 뒷산에 발 걸린다./ 뵈는 하늘 좁구나!/ 땅은 더 쫍구나!/ 냇물도 적구나!/ 논밭 거칠구나!/ 월곡 자리 잡은 이 골짝에/ 금만평 닮게 하자/ 만경강 물 품어 올리자/ 주름 잡힌 농민 얼굴 피어주자/ 지게를 벗겨 주자/ 고지 빚 없애자/ 장리쌀 없애자/ 우리들도 넥타이 매고 5거리를 활보하자./ 아들 딸 수돗물 먹이며 공부 시키자/ 이 한 풀고자/ 전주 옴팍집에서/ 고산 장터에서/ 봉상장 어귀에서/ 삼례 4거리에서/ 쇠전머리서/ 소농리 자갈길에서/ 이서 황토백이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외쳐대며/ 까칠한 손 잡아주던/ 유수(柳?) 윤상 선생 수연 자리에/ 새가 달려든다./ 봉황이 나래 핀다./ 골목이 넓어졌다./ 자동차가 들어온다./ 금마 헌병대 마당에서/ 총탄 맞고 쓰러진 의사의 넋이 숨 쉬고 있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
최종편집: 2025-06-24 13: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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