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고산촌 마을. 스물 세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자그마한 시골마을이다. 지극히 평범한 시골 마을이 완주군에서 아름다운 마을로 주목을 받고 있다. 주민들은 이기열(50)·이은숙(46)부부가 이사 오면서부터 라고 하는데, 그동안 이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완주와 인연 맺다 이기열씨는 현재 고산촌마을 이장이다. 그의 고향은 대전. 한때 국내 굴지의 철강회사 대리점을 운영했던 그는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운주 대둔산 인근으로 이사와 펜션사업을 시작하면서 완주와 인연을 맺게 됐다. 이후 3년 만에 펜션 사업을 접고, 고산촌 마을로 들어와 10년째 주민으로 살고 있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천등산과 마을 인심에 홀딱 반해 주저 없이 결정했단다. 생활하기 불편해 시골로 이사 오는 것에 아내가 반대했을 법도 한데 흔쾌히 허락했다고 하니 부부에게는 공통분모가 있을 것 같다. 물었더니 같은 대학 선후배에다 ‘산’을 좋아해 같은 산악회에서 만나 결혼에 골인 했다고. ‘산’이 사랑을 맺어 줬고, 부부의 인연까지 선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안 닐 듯싶다. ■고산촌 마을 이장 되다 고산촌 마을은 평촌마을에 편입돼있다가 최근 분리됐다. 분리된 이후 이기열씨가 첫 이장을 맡았다. 마을 어르신들의 두터운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실제 10년 전 이 마을로 이사 오자마자 부부는 동네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드리는 것은 기본, 선물 들어온 사과 한 박스도 그냥 집에 두는 법이 없이 몇 개씩이라도 나눠 이웃 어르신들과 함께 나누며 신뢰를 쌓아갔다. “제 아내가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어르신들만 보면 아버지, 어머니 생각난다며 잘 챙겼어요.” 부부의 이런 아름다운 마음은 마을주민들에게 통했다. 아침에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면 대문에는 귤, 무, 호박, 감자, 양파 등이 비닐봉투에 담겨져 부부를 맨 처음 맞이했다. 밤사이 마을 주민들이 재배한 농산물을 부부에게 주고 싶어 몰래 가져다 놓은 것. 이제는 일상이 됐으니 이렇듯 부부와 마을사람들은 서로 닮아갔다. ■아름다운 마을로 탈바꿈 고산촌 마을 초입에는 마을 방문을 환영하듯 다섯 장승이 줄 지어 인사한다. 서 있는 모습은 절로 웃음 짓게 만든다. 시작에 불과하다. 마을로 들어서자 담벼락은 다양한 그림들로 채워져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시(詩)가 새겨진 돌판도 벽화와 조화를 이루면서 멋진 작품이 됐다. 마을 임시 경로당 앞에는 슈퍼마켓에서나 볼 수 있는 냉장고도 눈에 띄는데, 코드가 없는 걸 보니 고장 나 버리기 직전 주워온 것이 분명했다. 수명을 다한 냉장고에 색을 칠하고, 예쁜 글을 새기니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멋진 책장이 됐다. 이 모두가 이기열씨가 이장이 되고 난 뒤 벌어진 일이었다. “틈 날 때마다 장승을 하나하나 만들어 세웠어요. 벽화는 작년에 익산희망연대팀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1박 2일 동안 무료로 작업을 했습니다. 정말 감사하죠.”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 단체 활동을 하면서 쌓은 인맥을 활용해 벽화를 완성했는데, 마을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원봉사팀에게 숙소와 음식을 제공했기 때문에 마을이 아름답게 꾸며졌다며 이기열 이장은 마을 주민들에게 공을 돌렸다. 벽화, 장승 외에도 게시판, 화분 등 마을 어디를 둘러봐도 부부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마을 정자 옆에 새롭게 설치된 데크 역시 그의 2년 치 이장 월급을 투자된 기가 막힌 작품 중 하나. ■경로당 신축 위해 발로 뛰어 고산촌 마을 이기열 이장에게는 고민거리가 하나 있다. 바로 마을 경로당을 짓는 것이다. 마을 경로당을 짓기 위해 들어가는 사업비는 1억 2천만원. 군에서 6천만원 지원이 확정됐고, 나머지 6천만원을 모으기 위해 발 벗고 나섰으나 역부족. 주민들이 30만원부터 많게는 100만원까지 모금을 해주고, 출향인사들까지 수소문해 비용을 모으는 등 경로당 신축에 모두가 힘을 보탰다. “일단 부지를 매입했지만, 사업비가 모자라 혹시라도 지역에 선의의 뜻을 가진 기업이 됐든 독지가가 됐든 도움을 받고 싶어요.” 그는 경로당을 지을 수 있다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며, 최근에는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사이트에 사연을 올려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스토리펀딩까지 계획하고 있다. 경로당 신축 외에 에너지 자립마을을 만들어 보는 꿈도 갖고 있다. “마을 가구수가 적다보니 다른 마을에 비해 적은 예산과 적은 에너지로 마을을 예쁘게 가꿀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요. 고민해보니 문득 에너지자립마을이 떠오르더라고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사라진 옛길을 복원해 산책길로 아름답게 꾸며, 언제든 사람들이 편히 쉬고 갈 수 있는 마을로 만들고 싶단다. ■정치 관심 無, 생활정치 실천 이기열 이장은 아내와 2남 1녀를 두고 있다. 첫째 아들의 이름은 강호(22), 둘째 딸은 경아(20), 막내 아들은 강산(12). 강호와 경아, 모두 운주초와 운주중을 졸업했다. 큰 아들 강호가 9살 때 마을로 들어왔는데 어느 새 대학생이 됐다. 자녀 때문에 자연스럽게 초등학교 운영위원장을 4년 동안 맡았고, 초등학교 학부모 대표와 운주교육공동체 사무국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때문에 ‘정치에 관심 있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많이 받게 되는데, 그는 ‘전혀 아니다’라고 확답했다. “생활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즐겁게 하고, 그 일로 인해 사람들이 행복하다면 그 것이 하나의 생활정치가 아닐까요?” 천등산과 대둔산을 연계한 등산로 개발, 운주 초·중학교 통폐합 문제 등 이기열 이장의 머릿속에는 온통 운주와 고산촌마을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 누구보다 지역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가진 이기열 이장과의 인터뷰에서 고산촌의 밝은 미래가 그려진다. “어머니께서 철학관에서 사주를 봤는데 저는 완주에서 뼈를 묻으라고 했다는데요. 평생 이곳에 살면서 지역민들과 힘을 모으면 운주 내에서도 얼마든지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최종편집: 2025-08-11 01: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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