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깊이 파고들지를 못해 생졸년을 모른다. 상옥 부부는 자녀 형제도 없이 있다면 오직 고산면 읍내리 이웃뿐이었다. 당시 박건호 면장은 소탈하고 술을 잘 했다. 술기 거나한 면장을 만난 나씨가 “면장 님! 아시다시피 우리 부부는 고독한 사람입니다. 가지고 있는 땅 줄 사람도 받을 사람도 없으니 우리 내외 죽으면 면에서 가져가시오” 박 면장 “별소리 다 하네. 쓸 데 없는 말 말고 술이나 한 잔 받으시오” 얼마 후 양인은 죽었다. 박 면장은 나씨에게 들은 땅 이야기가 문제이었다. 면에서 받아들이자면 수속도 복잡하고 공유토지가 되니 둘 사이에 있었던 일로 뒤에 알아줄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고산양로당원(高山養老堂員)과 의논하니 모두 좋아한다. 양로당에서는 고마워 마당 가에 △士人羅州羅公尙玉施德不忘碑(사인나주나공상옥시덕불망비)와 △金海金氏積德不忘碑(김해김씨적덕불망비)를 나란히 세웠다. 양로당은 재산이 생겨 좋았고 면장은 ‘내 판단 옳았구나!’ 보람을 느꼈다. 그 해가 병인년(丙寅年) 2월이니 서기1986년 이야기이다. 세월이 흘러 임원이 바뀌고 근래 안흥순 옹이 회장을 맡아 ‘불망비(不忘碑)’라면 밥 한 술 떠 놓고 ‘잊지 않는 게 도리’라며 음력 9월 9일 회원들과 함께 제사한다. 축문이 이러하다. “엎드려 두 분을 생각하옵니다(복이양위-伏以兩位), 아끼고 사랑하던 땅을(애호전토-愛護田土), 마을에 쾌히 내어놓아(쾌척여리-快擲閭里), 노인 봉양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에(혜택양로(惠澤養老), 그 공적 영원히 칭송할 만 합니다(공적가송-功績可頌), 오늘 좋은 날을 맞아(치차양신-値此良辰), 정성껏 차려 드리오니(서수격사(庶羞格斯), 바라옵건대(상-尙) 흠향하옵소서(향-饗:김철수)” 홀기에 맞춰 정성을 다한다. 받은 땅은 1천여 평(3,300㎡) 가치도 크지만 해마다 세수가 들어 와 노인들은 한 해 몇 차례씩 잔치를 연다. 행복한 양로당이다. 음복(飮福)을 한 후 열 아들 둔 사람보다 나공과 김해김씨가 훨씬 낫다며 좋은 반응을 보이자 정성이 더 쏟아져 비석 바침 돌을 높였다. 비의 앞면 글씨에 여러 가지 일화가 묻어있다. ‘사인(士人)’ 두 자를 비 새긴 뒤에 넣었고, 김해김씨 글씨도 위아래가 다르다. 하여간 역사가 오래 되니(상량문 1905년) 일화와 미담이 많아지며 양로당 사적비의 ‘사(史)’에 대한 질문도 더러 나온다. 항우 장사도 나이한테는 꼼짝 못한다더니 회원들 거의 술에 약하고, 말수도 적으며 수저 놓으면 곧 일어선다. ‘양로당’이라 하니 ‘노(老)’에 놀란(?) 젊은 층의 출입이 적어 이게 무척 아쉽다. 운주면 금당리 용계원에도 이와 똑같은 일이 있어 해마다 마을에서 기증자를 위하여 제사를 지낸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
최종편집: 2025-06-24 13:5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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