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1일 바람 선선 가을 날씨다. 부여 나들이 하루 코스 마땅한 거리로 듣고 볼 게 많아 주최 측 장소 선정 잘 했다.
여기 저기 발 디디기 좋으며 가는 곳 마다 해설원 설명이 쉬워 다른 물음이 필요 없다. 차중 간식 백마강 배 타기와 점심식사가 원만했으며 돌아오는 길이 새삼스러웠다.
금강 하구 뚝 건너 군산 나들목 주차장 너른 자리에 차려진 서천 생선회 접시 앞에서 말문이 열려간다. 술 낸 분에 박수를 보냈고 ‘개약장아찌’에 자신감을 나타내는 용기(?)도 나왔다.
말은 돌고 돌아 익산 왕궁탑 주변 발굴과 미륵사지 서탑 복원 이야기에 이어 완주로 넘어왔다.
△고산면 서봉리 석실분(石室墳) △봉림사지(鳳林寺址) △대둔사지(大芚寺址) △운문사(雲門寺) 불탄 자리 △구이면 계곡리 석실분과 △대아저수지 구(舊) 댐 이야기가 결국 ‘사람[인물:人物]’으로 이어졌다.
금림무용단(심가희, 가영)과 김혜정(김창수 딸)을 아끼자는 말에 이어 안호영 국회의원 얼굴 아직 못 보았다는 유권자 많았고, 천주교 이야기에 ‘어름골(?)’이 등장했다.
고장이 제대로 발전하려면 △학자들의 올바른 이론 제기와 △공감하는 주민이 있어야 하고 △앞장서는 공무원이 나서야 일이 된다는 주장이다. 전라도·경상도 큰 차이는 바로 사람 차이란다. 성주 ‘사드’반대에 갓 쓰고 도포 입은 유림들이 나서서 상소문을 올렸다.
고산 관내에 갓 있는 유생이 드물다. 전주대대 이전 문제가 잘 풀렸으니 망정이지 한문 상소문 쓸 인물이나 갓 쓰고 도포 차람으로 나설 사문(斯文) 있었겠나? 제 것은 자기들이 챙기고 지켜나가야 한다.
일부 학교 화단, 담장 밑, 운동장에 잡풀이 무성하였다. ‘고산에 많던 거사비(去事碑) 어디 갔나?’ 이 물음에 대답이 어렵고, 고산 현청·군청터 어찌 됐나? 다그치면 부끄럽다.
비봉면 이전리 성 터가 숲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뿐이지 완연한데 주민들 기억에서 조차 멀어진다. 사람 없고 돈 없으니 무시당하고 무력감에 짓눌려 늘 뒤처지는 게 ○○지역이다.
2016년 8월 31일 둘러본 ‘부여(扶餘)’를 글자대로 풀어 보니 ‘나머지를 붙들어라’이다.
고산[완주] 백제 땅이었다. 우리 고장에도 ‘남은 옛 것 있으면 붙들어야’ 부여 다녀 온 보람이 있다.
기관의 이사(理事)란 ‘이치에 맞게 일하는 사람’이니 제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행복 얻는 길’이 뭉치는 일이다.
삼례 주민들 나설 때가 왔다. 전라좌도·우도 사람 삼례를 거쳐야 서울에 갔다. 여기에 착안 “사람 축제 판”을 벌려보자. 교육계 종교계 사회단체 각 정당원이 나서서 판을 키워 보자는 제언이다.
‘사람 박람회!’ 사람 많이 다닌 역참을 상기하면 멋진 아이디어 쏟아진다. 세계 사람 모두 끌어 모아 보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