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말하여 ‘학생들 아침에 타고 학교 갔다 오후 다시 오는 기차’를 말한다.
완주에서 삼례·조촌 주민이 잘 알며 가장 많은 혜택을 봤다. 초등학교를 나와 이 기차를 타느냐 못 타냐에 따라 신분과 사람 8자가 바뀌었다.
아침마다 플랫폼(platform)에서 만나니 전주고등보통학교, 남중학교(일인), 전주농업학교, 공업학교, 사범학교, 신흥학교, 여자고등보통학교, 이리농림학교, 남성중학생 누가 결석 누가 개근인줄을 다 안다.
저 여학생은 뉘 집 딸로 가품과 성세까지도 훤하다. 먼발치에서 그 여학생을 보면 기분이 좋았고, 한 자리에 나란히 앉아 전주역에서 내리는 경우 황홀경에 빠졌던 날이다.
단정한 교복에 검정 모자, 손에든 책가방 그 씩씩한 모습에 서로 반하여 연애편지가 오갔고, 삼례 김유진(가명)과 동산촌 최채옥(가명)은 눈이 맞아 하루도 결석이 없었으며, 졸업 후 김 군은 관리, 최 양은 교원이 되어 혼인했다.
조촌·삼례면민의 학력수준이 완주에서 가장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촌면에서 국회의원이 셋, 송준호, 장명수, 이기반, 서정상, 김남곤 등 저명인사가 많이 나왔음은 모두 통학열차 덕분이었다.
모자에 백선(白線)이 셋, 둘, 하나, 아주 없느냐에 따라 선망의 도가 달라졌고, 흰 칼라에 등받이를 한 여학생이 어느 마을 뉘 집 대문 안으로 들어가느냐에 따라 마을도 집안도 달리 보였다.
자전거로 나와 역전에 세워두고 기차 타는 남학생은 부러움을 독차지 했으며 뒤에 여학생을 태우고 가는 날이면 동네가 발칵 뒤집힐 정도의 화제 거리였다.
여학생의 운동화 위로 나온 하얀 종아리와 남자의 농구화가 승객의 눈길을 끌었다.
삼례 통학생 중에도 이름 있는 분이 많았다. 박영철 외 전라북도 4대 지주가 삼례사람이었다.
개인 개인은 훌륭하나 단결력이 부족해 제대로 실력발휘를 못한 게 단점이다.
2대 총선거에 삼례 분 10인이 나왔으니 되겠는가. 이제껏 국회의원 배출을 못하더니 깨달은 바 있어 근래 권창환·송지용을 도의회에 보냈다.
삼례주민 뭉치면 대단하다. 3대 민의원 이존화(李存華)를 압박(?) 전라선 급행열차를 멈추게 했다.
당시 이존화 민의원(3∼4대)은 국회문교분과위원장에 자유당조직부장으로 중앙에서 말이 먹혀들었고, 비봉 촌(村)출신이니 삼례표가 절실했다.
이런 여건 따라 서로 의기투합 삼례고등학교(현 공고), 삼례여자고등학교(현 한빛)가 섰고, 이러다 통학차 소리가 ‘통근차(通勤車)’ 지칭으로 바뀌었다.
조촌은 어차피 전주로 들어갔으니 말할 게 없고, 남은 삼례읍민은 제대로 똘똘 뭉쳐 새로운 가치를 끌어내기 바란다. 단결! 먼저 손을 내밀어라.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