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나 서울로 이사 간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다.
‘이 사람아! 안 가면 아니 되나?’ ‘이미 결판이 난 걸…’ 눈물을 뚝뚝 떨어뜨린다.
이를 보던 친구가 번쩍 끓어 안더니 ‘니 신세나 내 신세나 왜 이런다냐.’ 둘이 부둥켜안고 운다.
평생 서울 열 번도 가지 않은 사람이다. 오로지 고향 지킴이 파수꾼, 청직이 수문장 격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시험(?)도 없이 ‘가정과(家庭科)’에 입학하자 작업 전공(專攻)을 했다.
꼴 베고, 땔나무를 했으며, 논매고, 풀베기(못자리, 바닥, 보리) 식구가 늘면 호박 구덩이 하나 더 파고, 냇가에 나가 자갈을 치워 모 몇 춤을 더 심었으며, 팔밭을 파 고구마 고추를 가꾸는데 반공일, 일요일, 졸업도 없었다.
새끼 꼬아 가마니치고, 섶 내다 울타리, 나래 엮어 집이기, 농약통 업어주기, 돼지막 짓기, 거름내기, 멍석 만들기, 쟁기질에 손톱발톱이 다 달았다.
아이 학교 넣으면 일 더 했고, 부모 삼년상 치르며 허리띠를 꼭꼭 졸라 맺다. 자녀 여우고 방 좁아 집칸 늘리다 보니 어느덧 70고개 휴가(?) 방학(?)없이 새벽에 일어나 수저 놓으면 논밭 구석에서 엎드려 지내다 80줄이다.
눈 침침, 귀 윙윙, 부인도 멀어졌고, 어깨, 다리, 허리, 팔, 무릎, 고개 안 아픈 데가 없어 한 달에 두어 번 찾던 병원을 매주 한 차례 가야 아픔을 견뎌낸다.
나가 사는 아들 부부가 시골 살림을 접고 서울로 합치잔다. 말이야 지당하다. 평생 휴일 연가 정년 없이 일만 하셨으니 얼른 사표(?)내고 서울에 와 편히(?) 사시란다.
‘꾸부리고 사는 집, 평생 지킨 땅, 메갓, 보이는 들판을 도저히 놓을 수 없다’하니 작은 아들 내외가 투표로 가부를 정하자며 형 평수를 늘려야하니 1억원을 보태란다.
결국 통장에 든 7,000만원에 육신 같은 논을 팔아 1억 원을 챙겼다.
아무것도 필요 없다며 살림 그대로 둔 채 어느 날 아들·며느리가 차에 태워 모셔갔다.
아파트 문 열기, 화장실 문화, 양로당 분위기가 고향과 어찌 같으랴. 아프던 병에 향수병이 더해지고 코 먹먹 미세먼지 속에 기침이 자꾸 나 병원에 가니 의사의 말이 ‘그냥 지니고 사는 도리 밖에’ 없단다. ‘건전지 달아 초침, 분침, 시침이 제 각각 가는 격’이란다.
석 달만에 눈을 감았다. 어느 좁은 장례식장에서 곡성 한 번 듣지 못하고 3일 되는 날 ○○승화원에서 두 시간 만에 단지 하나가 아들딸에게 안겨졌다.
이게 인생이다. 펄펄 날릴 재[灰] 한줌이 되는 데…80년. 지나친 절약과 고집이 왜 필요한가. 구미 있을 때 먹고, 누울 자리 있으면 한 소곰 잠을 자라. 옷 아무리 많아도 세 겹 네 겹 끼어 입지 못한다. 안 먹고 안 쓰면 뭘 해?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