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군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그룹사운드가 하나 있다.
일반인이 아닌 고등학생들로 구성돼 있는데 대한민국 청소년 밴드 가운데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우리지역에 살고 있으면서 음악에 조금 관심이 있다면 눈치 챘을 듯싶다.
바로 완주고등학교 그룹사운드 동아리 ‘뮤더(Muder. 지도교사 김재주)’가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지난 2001년 창단됐으니 올해로 16살이 된 뮤더의 드라마와 같은 지난 이야기를 소개한다.
■뮤더는 완주고에서 탄생할 운명
앞서 말했듯 뮤더의 탄생은 지난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완주고에는 음악관련 동아리는 없었고, 축구와 농구 등 4~5개 정도의 운동 동아리가 전부였다.
뮤더의 탄생을 예고라도 한 것일까? 그해 학창시절 그룹사운드 동아리 활동을 하며 이름을 날렸던 김재주(45. 미술)교사가 이 학교에 부임했다.
어느 날 그는 수업시간에 혼자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한 남학생에게 다가가 ‘이 부분은 이렇게 부르면 어떨까?’라고 묻자, 학생 왈 ‘선생님이 음악에 대해 아세요?’라고 되물었다는 것.
실용음악을 준비하는 학생이라 나름 자신의 전문 분야를 미술교사가 가르치려 했으니 그런 질문을 던졌던 이유도 납득이 간다.
하지만 김 교사도 당시 남자들에게 흔치 않은 피아노를 어려서부터 배웠고, 남학교인 해성고 시절, 그룹사운드 창단멤버로 활동했을 정도로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
그러니 자존심에 상처가 날 법도 했다. 학생의 질문에 자극을 받은 그는 그룹사운드 창단을 결심하고, 수업시간을 통해 틈틈이 재능 있는 학생을 찾아내 뮤더라는 음악동아리를 만들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뮤더, 시작은 초라했지만 열정 으로 이겨내
‘뮤더’는 ‘뮤직(Music)’과 ‘리더(Leader)’의 합성어로, ‘음악의 선구자’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멋진 이름과는 달리 연습할 장소와 장비가 문제였다.
결국 궁여지책으로 김 교사가 쓰던 미술실 한 쪽 구석을 연습실로 쓰고, 학창시절 사용했던 낡은 기타와 키보드를 고치고, 학생들과 함께 못 쓰는 폐타이어를 주워 드럼으로 활용했다.
이렇듯 시작은 부족하고 어설펐다. 이뿐 아니다. 지금이야 교장과 교사, 학부모, 가족, 학생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응원을 받고 있지만 처음에는 인문계 학교다 보니 대학진학을 이유로 학부모들의 반대가 심했다. 학교장과 동료 교사들도 밴드 결성을 만류했다.
하지만 김 교사는 포기하지 않고, 밴드활동의 장점을 부각, 끝내 학부모들을 설득시켰고,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실력으로 증명키로 했다.
어렵게 창단 후 학생들이 십시일반 회비를 모아 중고 드럼을 마련, 밴드 창단 6개월 만에 주변의 도움 없이 작은 연습실도 갖췄다. 또한 방과 후 연습실에 모여 기본기를 닦았고, 주말을 이용해 다른 곳을 빌려 합주실력을 다졌다.
무엇보다 학교와 학부모의 선입견과 좋지 않은 시선, 열악한 환경을 학생들 스스로가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이겨내면서 덩달아 김 교사도 힘을 얻어 최고의 밴드라는 목표를 향해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음악을 즐길 줄 아는 뮤더
학생들은 악기를 처음 배우고, 김 교사 역시 지도 경험이 부족했던 탓에 1년 동안 참가한 대회마다 고배를 마셨다.
그때마다 학생들은 더욱 단단해졌다. 메달에 연연하지 않고, 즐겁게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면서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물론 탄탄한 실력 뒤에는 김 교사의 땀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창단 후 재정의 어려움 때문에 레슨을 포기하고, 일렉기타와 베이스 학원에 다니며, 직접 학생들을 지도했다. 평일은 말할 것도 없고, 주말과 휴일도 반납한 채 학생들과 함께 오로지 음악에만 몰두했으니 가정에는 빵점 아빠, 빵점 남편이었다.
음악지도 시간을 제외하고는 틈틈이 공연을 보고, 전북지역 교사들을 모아 밴드를 만들어 활동하는 등 실전 경험을 쌓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러한 노력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겪게 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전북 대표 스쿨 밴드 우뚝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처럼, 앞만 바라보고, 열심히 땀 흘려 노력한 결과, 뮤더는 창단 이듬해 겨울, 드디어 전라북도 청소년 동아리 경진대회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대상(전라북도지사 표창)을 거머쥐게 됐다.
김 교사는 “처음 대상을 타는 날, 비가 많이 왔다”면서“그간에 노력들이 좋은 결과로 돌아와 학생들과 부둥켜안고 비를 흠뻑 맞으며 울었고, 학생들에게 헹가래를 수도 없이 받았던 그날을 잊지 못한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기충천한 뮤더는 다음 해 같은 대회에 참가, 2년 연속 대상의 기쁨을 만끽하며 결성 3년 만에 명실상부 전북을 대표하는 스쿨밴드로 우뚝 서게 됐다.
이후에 있던 통통통 청소년 락밴드 경연대회, 마실樂청소년예능경연대회, 글로벌 청소년 예술제 등 전북대회는 참가 족족 대상을 휩쓸었고, 타 스쿨 밴드의 견제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전국대회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전국청소년 락 페스티벌에서 제5·6·7회 대상 수상으로 3연패 달성(여성가족부장관상), 여수 국제 청소년축제 장려상, 대한민국 청소년 동아리 경연대회 우등상 등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상을 받았다.
이제는 고등학교를 넘어 웬만한 대학 그룹사운드와 어깨를 견줄 만큼 실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고, 작년과 올해 완주군 인재육성사업에 2년 연속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뮤더는 학교 홍보 책자 표지 장식은 물론 대회 때마다 학교장과 교사, 학부모, 가족들이 참석해 응원하는 등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다.
아울러 지역을 위한 재능 나눔에도 동참하고 있는데, 완주군청 개청식을 비롯 선아학교 위문 공연, 와일드푸드축제, 오수 의견문화제, 소리축제, 금산 봄꽃 축제 등이 대표적이 예다.
지난 달 27에는 교육부와 인천광역시교육청이 주관한 ‘제6회 전국학교예술교육 페스티벌’ 폐막식 엔딩공연에 선정, 성황리에 끝마쳤다.
■뮤더, 청소년과 학생들에게 희망 주다
뮤더는 현재 18기가 활동 중인데, 시스템이 잘 갖춰져 3학년이 2학년, 2학년이 1학년을 가르쳐 준다.
김 교사는 전체적인 합주만 잡아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학생들이 직접 작곡한 노래도 6개 정도 된다. 올해 쓴 곡으로 지난 8월 부안에서 열린 전국 청소년 락페스티벌에서 금상을 받기도 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뮤더는 음악보다는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학생들, 소위 천방지축 문제아와 모범생이 섞여있다는 것이다. 안 어울릴 것 같은 조합이다.
하지만 음악으로 들어가면 동화되고, ‘한번 해보자’라고 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접하고 체계적으로 배운 타 지역 밴드와 비교되지만 차별화 되는 대목이다.
음악에 ‘음’자도 모르는 학생이 뮤더가 되면, 삶이 바뀌고, 상을 받으며, 많은 사람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이런 데에는 김 교사만의 비밀공식이 있다고 하지만 취재하면서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어찌됐든 음악을 통해 많은 학생들과 청소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장준영·김현정(3. 보컬), 박한범(3. 일렉기타), 김예찬(3. 드럼), 이다인(3. 키보드), 정훈(2. 드럼), 은경(2. 키보드), 김민성(2. 베이스기타), 최시헌(1. 일렉기타) 등 9명의 18기 뮤더 멤버와 김재주 교사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뮤더의 이야기는 3박4일 밤을 새도 모자랄 만큼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다. 아쉽지만 김재주 교사의 계획과 포부를 끝으로 마무리한다.
“제가 밴드를 만들지 않았다면 평범한 교사였겠지요. 아이들하고 20~30년 차이 나지만 그들 속으로 들어가니까 애들이 이해가 됩니다. 아이들을 성숙시키려면 교육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맞춰가야죠. 결국 아이들하고 함께 살아가는 겁니다. 뮤더와 함께 교사의 첫 발을 내딛었으니 뮤더는 저의 친구입니다. 저의 퇴임식은 뮤더 모든 기수가 모인 가운데 대한민국 최고의 공연장에서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