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마다 아이들 울음소리 그친지 오래이다. 그러나 어른들 곡성은 많다고 봐야 한다. 밖으로 소리 내지 않을 뿐이다.
은행 빚 얻어 가르쳤는데 이자는 쌓이고 취직은 아니 되어 웃을 맛이 없다.
혼인하라는 말 지긋지긋하며 ‘뭘 해먹고 사냐’가 문제이다.
가계 찾는 손님 끊겨 손을 떼려 하나 덤비는 자 없다. 하숙 치던 옆방 이젠 나가지도 않아 텅텅 비어 건물 자체가 썰렁하다. 교회도 실업자가 늘어 수입이 줄어든단다.
학교마다 신입생이 적어 폐교 직전이고 곧 선생님 실업자 쏟아질 판이다. 북한 미사일과 핵폭탄에 대비 국방비는 늘어간다. 해운업이 나빠 조선소 일이 줄어 수 천 명이 몰려나야 한단다.
세상 제1이라던 삼성에서 구조조정으로 1년간 8천 명이 떠난다. 하사관학교 가기가 별 따기이며 9급 공무원 4,120인을 뽑는데 16만3천791인이 응시 39.7:1로 그 어려움 아디에 비하랴.
아! 부모도 본인도 하늘도 통곡할 일이다. 전엔 ‘하다 못하면 농사나 짓지!’ 했는데 지금은 어림없는 소리다. 농약 천 여 종에 비료 역시 100여 가지 이걸 제대로 써야 농사가 되는데 자재 가격 품삯은 오르고 작물 값은 내려 땅을 구룰 일이다.
무릎 허리 다리 어깨는 아프고 귀 어두우며 눈마저 침침한데 의사 말 “젊어서 너무 부려먹고 늙어 그런 디 난들 어쩌라고요’’ 솔직하게 실토한다.
조선시대도 절통한 일이야 많았다. 아전 횡포에 신관 사또 탐욕이 겹치면 특산물과 길쌈한 베까지 빼앗겼다.
1859년 황상(黃裳) 일흔두 살 어른이 지은 시다. “우리 사또 내려오매(我候北來:아후북래), 단비 흠씬 내린 듯(甘雨俱臻:감우구진), 말 타고 출경하면(輕俊出境:경준출경), 백성들 어깨 쉰다네(息肩者民:식견자민)…” 노년의 시련을 오롯하게 읊었다.
에 군수·군정 이야기 빼곡하며, 다양한 지역소식, 군의원 웃는 모습 환해서 다행이다. 이 좋은 신문 한해 5만원인데 돈 아까워 읽지 못하는 군민 형편이 안타깝다.
최근 발행한 신문에서는 “올해 완주군 농업인들에게 다양하고 풍요로운 복지 혜택을…농(農)토피아 완주가 되도록 다각적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썼다. 농민 울음소리 진정시키는 좋은 소식이라 반갑다.
“꺼억∼꺽 장서방 어찌어찌 사는가, 아들네 집에서 콩 한 되, 딸네 집에서 팥 한 되, 그작그작 먹고 사네만, 뒷산 총잽이가 무섭다네” 이다.
우리 군민 아무리 바쁘고 어려워도 세상 보고 제대로 판단할 기회까지 빼앗겨서야 되겠나. 날마다 끼는 안개 연무라 속지만 실은 미세 먼지 예전 같으면 전쟁 날 일이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