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군 봉동읍 은하리 우산마을에 사는 정종우(80) 어르신. 아들 삼형제를 둔 아버지다.
그의 장남 성춘(52)씨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학·석사)한 뒤, 일본 히토츠바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 국내로 돌아와 현재 국무총리 산하 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서 국제거시금융본부장을 맡고 있다.
차남인 성조(50)씨는 전북대 환경공학과를 나와 환경부 사무관으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막내 광희(47)씨는 서울시립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현재 완주산단에 소재한 한솔케미칼 전주공장에서 공장장 바로 아래 직책인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처럼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운 어르신이지만, 지나 온 세월은 눈물겹도록 힘겨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가난한 농부의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동생 넷을 홀로 키울 정도로 부지런했다.
스물여덟 살에 아내 박성순(76)씨와 만나 결혼했고, 아들 셋을 낳았다.
자식들을 가르치기 위해 매일 같이 아내는 농사지은 채소를 보따리에 싸 머리에 이고 전주시내로 나가 종일 쪼그려 앉아 팔았다.
심지어 김장때가 되면 버스를 타고 전라남도까지 내려가 생강을 2~3일 동안 팔고 올라오는 일도 다반사였다.
정종우 어르신 역시 농사는 물론 이것, 저것 안 해 본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일하며 가정을 꾸려나갔다.
“내가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자식들은 제대로 가르치고 싶은 일념 하나뿐이었어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자식들은 부모의 마음을 안 듯 속 썩이거나 불평불만 하나 없이 잘 자랐고, 공부도 제법 잘 해 스스로 앞길을 열어갔다.
이제는 삼형제가 결혼해서 자식들 낳고 어엿한 직장에 다니는 모습이 그저 감사하다는 정종우 어르신.
어르신은 ‘형제간의 우애’, ‘가정의 화목’, ‘신의와 겸손’을 입버릇처럼 강조했던 것이 오늘을 있게 했다고 말했다.
“꿈이요? 뭐 있겠어요. 내 아내와 자식들 그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전부죠.”
자식들의 성화에 못 이겨 농사일에 조금은 숨을 고르면서 2년 전부터 봉동읍주민자치센터에서 서예교실 강사님으로서 주민들에게 서예를 가르치고 있다.
서예국전 초대작가인 그가 붓을 잡은 지는 지금으로부터 25년이란다. 16년 전 큰 수술을 받은 뒤 좋아하던 서예를 내려놓았다가 2014년부터 다시 붓을 잡았다.
큰 아들 성춘씨의 바람대로 인생의 무거운 짐 내려놓고 이제부터 황금기를 마음껏 누리며, 장수하시기를 소망하며, 정종우 어르신이 가장 좋아한다는 글귀를 끝으로 인터뷰를 마친다.
“자기가 하지 않고, 무엇을 바라는 것은 안 됩니다. 할 것 다 해놓고 하늘의 뜻을 기다려야죠. 그래서 저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란 고사성어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