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 흔히 ‘한 잔 하세!’하며 들어가 술 여러 병 마시고 2차 3차 가는 경우 있었다. 주머니에 돈 한 푼 없으면서 친구 ‘외상술’ 대접했던 경험 있을 것이다.
이런 인정파가 식구에겐 어땠을까. 한·미연합훈련과 여·야 공천 문제에, 이세돌 ‘지는 바둑 얘기’가 전부이던 3월 13일 대중식당에 갔다.
일행 8인의 점심을 주문하는데 ‘갈비탕 넷’, ‘우거지국 셋’, 하나는 기권 값을 선불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먹을 것이 나왔는데 며느리와 손녀 그 친구 둘은 갈비탕, 아들·나·처는 우거지국… 앗! 실수 했다. ‘쇠 갈비탕’을 두고 왜 며느리·아들 앞에서 처에게 ‘우거지국’이었더냐.
밥상 늘 차리고 빨래해 주며 매사 아끼는 부인인줄만 알지 ‘갈비탕’ 생각을 못한 철부지이다.
처 우거지국물 몇 술 뜨더니만 수저를 놓았다. 갈비탕 9,000원, 우거지국 5,000원 돈 4,000원 차이가 문제 아니라 배려 못한 모자람이 모처럼의 외식 분위기를 망쳤고 ‘사가망처(徙家忘妻)’ 누를 범했다. 늘 잘해 주니 환대를 모른 탓이다.
‘사람 병원에서 죽을 때 아파서가 아니라 못 먹어 죽더라’ 의사 아버지 말이다. 이빨 성해 남 불러 밥맛 좋으면 큰 복이나 돈 두고 숨지면 상속 절차만 번거롭단다.
큰 부자 김 아무개 아버지는 맏아들과, 어머니는 작은 아들집에서 사는데 그 까닭 모르나 본받을 바는 아니다.
김○회 옹 장수 욕심이 아니라 ‘자기가 하루라도 더 살아 있어야 부인 돌본다.’는 것이다.
여러 차례 듣고도 며느리는 ‘갈비탕’ 처에겐 ‘우거지국’ 세상 남자들 부끄럽게 했다. “‘나는 그 것 못 먹어…’, ‘그 것 안 먹는다.’, ‘생각 없다’” 평생 그런 줄만 알았는데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게 아니었던 걸 알아다’는 통곡소리를 들었다.
인생은 재수(再修)가 없다. 오늘은 장애인의 날 부인 손 이끌고 시장 한 바퀴 돌며 빵, 과일, 고기, 딸기, 튀밥, 순대, 생선, 튀김 못 먹나 그 진심을 알아보자.
산후조리 못했고 무거운 짐 들어 무릎 달았으며, 가족계획 여러 차례 질긴 것 씹지 못하는 여인도 실은 장애인이다.
냉장고 반찬 장롱 속 옷가지를 못 찾는 남성들은 제발 잔소리 줄이며 흘러간 군가 ‘사나이로 태어나서…’ 이제 그만 접고 ‘여자의 일생’을 조용히 불어 봐라.
아무도 없는 집 문 열고 들어서는 그 고독을 상상해 봤나. 노인 대접 기사 그 인심 값이 천금이다.
가수에게 듣고 싶은 건 ‘노래’이듯 고향 소식 중 듣기 좋은 소리는 ‘흐뭇한 인심’ 이야기이다. 친구가 준 쌀밥 앞에서 감사 소리 절로 나온다. 행복한 기억 오래 지니며 ‘해고석란(海枯石爛:끝끝내 돌아오지 않음)’을 생각하자.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