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마치고도 이야기가 많다. 가장 억울한 사람은 적은 표차이로 떨어진 사람이고, 당선자는 어디서 누구 영향이라며 좋아한다. 꼴지 낙선자야 태연하다. 입후보 전부터 본인도 가족도 시민이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알면서 왜 출마했나. 이름을 알리고 경력(?)을 쌓으며 당 지지도를 높이려는 계산이었다.
야! 당이 왜 이다지도 많은가? 선거공보를 보니 △개혁국민신당 △국민의당 △기독교자유당 △노동당 △녹색당 △더불어민주당 △민주당 △민중연합당 △새누리당 △정의당… △무소속 등 다양하다. 옛날 당에는 자유당, 한독당, 남로당, 공화당, 민정당, 평민당이… 있었으며 이런 것 시험문제로 낸다면 새로운 일자리 학원 여러 개 생길 것이다.
여기에 동인, 서인, 남인, 북인, 노론, 소론, 대북, 소북, 탁남, 청남…까지 곁들여 묻는다면 참고서 장사 잘 되어 출판사도 한 몫 챙길 것이다.
당원 이야기에서 이 고장 손일동 씨는 독특한 분이었다. 자유당 완주군부위원장으로 이존화를 당선시켰고 본인도 전북도의원을 했다.
자유당이 몰락하자 다른 당이 생겼고 쟁쟁한 인물들이 새로 나와 자당에 들어오라 사정했지만 평생 딴 당적을 가져 보지 않아 지조·신념·의리를 지킨 정치인이라 평가한다.
4월 13일 총선거 바로 직전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당’으로 옮겨 간 이야기는 본인들이 잘 알기에 여기선 생략한다.
유희창 옹은 본선에서 떨어질 바엔 ‘예비선거’에서 탈락한 게 열 번 잘된 일이라며 집안사람을 위로하더라.
우리 완주출신 최영두 국회의원 생각을 하면 마음이 늘 찡하다. 군인이라 군사 정권에서 국회의원이 됐지만 교원봉급 인상문제로 싸우다(?) 사직서를 낸 대단한 정치인이다.
결국 ‘괘씸죄’에 걸러 다음 선거에 공천을 받지 못해 수원 인계동에서 교원, 학자, 군인, 정치인이 닭 똥구멍만 바라보는 양계업을 하다 ‘비전문 농업인 최영두’ 전 의원은 1969년 7월 4일(음 5월 20일) 오후 4시 20분 수원기독병원에서 마흔여섯 살 젊은 나이에 급환으로 별세했다.
지금 의료 수준이라면 죽지 않을 수도 있다. 언젠가 그의 딸 최선광(010- 3229-41xx)이 전화하더니만 소식이 끊겼다.
최 의원 묘 동작동 현충원에 있다. 이번 당선자(완주·진안·무주·장수)는 꽃 한 송이 들고 참배해야 의인(義人)소리 듣는다.
3선 유기정 의원은 당적을 떠나 고 이존화 의원의 부인을 도왔고, 아이들 취직을 시켰으며, 이전리에 청념비를 세울 때 큰돈을 보탰다.
전주공업고등학교에 동상이 있고, 공고는 금년 개교 100년이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