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문제는 변호사, 건강진단은 의사, 설교 강의는 신학교 교수가 전문인데, 남정이 출산 고통을 말하는 격이라 외람스럽다. 정례적으로 많은 사람을 모아놓고 얘기하는 예배 종교가 있다. 영화 구경 마친 관객들 생각이 각각 이듯이 설교에 대한 소견 역시 같을 수 없어 설교자가 매양 부담스럽단다. 교역자 같은 대상들 앞에서 5년, 8년, 10년 설교하기 얼마나 어렵겠나. 여기에 종이 신문과 책이 넘쳐나고 TV를 열면 천주교·원불교·기독교방송에서 명담이 쏟아진다. 석학(전문가)들이 준비하여 녹화한 내용이라 강단에서 직접 말하는 자에게 부담이 크기 마련이다. 자주 듣다보면 자기 교회 목사(설교자)와 부지부식간에 비교하더라는 게 목회자의 견해이며 실제 상황이다. 이런 현실에 도움이 좀 되지 않을까 궁리하던 중 ‘왕래설교(往來說敎)’를 제의한다. ▲설교란 ‘종교 뜻을 설명(preaching)’함이요, ‘타일러 가르침(admonish)’이며 ▲왕래란 ‘오고 감’과 ‘교제함이라’ 했다. 설교자의 말이 듣는 사람 머릿속에 팍팍 스며들어 온유, 절제, 화락해지면 성공이다. 매우 빠른 속도로 마치 정치인이 성명서(聲明書)를 읽어 내리 듯한 ‘장면’을 피해 보자는 의견이다. 개인 감정이 묻어나오는 높은 억양은 듣기에 민망하다. 불안 심리에 안정 오는 명언이면 훌륭하다. ‘하나님 강조’와 ‘예수 삶’을 조화롭게 설명하여 봉사, 희생, 양보가 몸에 배어 서로 ‘반가운 마음’이 들어나면 행복한 종교 생활로 평안하면 발전할 교회이다. 권위가 없어도 문제지만 ‘대하기 어려운 존재’로 보여도 무익하다. 차근차근 부드러운 논리전개가 명설교이고, 묻고 싶은 사이라면 집사, 권사, 장로가 마음 편하다. ‘이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며 세월 보내는 교회 없기를 바란다. 사회에 이름난 사람을 ‘명사’라 하며 목사도 ‘명사’에 들어 명사는 사회의 희망이다. 부패 막이에 소금이 좋듯이 명사가 ‘소금’ 역할을 하면 그 사회 희망이 있다. ‘천인지의(天仁地義)’ 이 4자성어 ‘유교’가 아니요, 조상들 하늘을 이렇게 우러러 보고 살아 왔기에 ‘천인지의’나 ‘천우신도(天佑神助)’의 깨우침이 전도로 자기성찰 바른 득도이다. 해방 후 김가전 목사 전주고 교장을 하다 전북도지사가 됐다. 질서가 없었던 게 아니라 해방정국 이처럼 아름다웠다. 전북의 어른 목사 누군가. 다 어른이라고? 이게 걱정이다. 외국인 마로덕 목사는 흰 얼굴 높은 코 보러온 사람 신도 만드는데 익숙했다. 1939년대 말 종리교회에서 마 목사 대한 기억이 자랑이고 이게 인연인지 삼례제일교회 당회록에서 회갑잔치와 칸막이 제거 사실 확인이 역시 보람이구나.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
최종편집: 2025-06-24 10: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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