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장에 가면 요지경이 있었다. ‘돋보기를 통하여 통안 그림을 들여다보는 장난감’이었다. “…세상은 요지경 속이다.…”이런 노래도 있다. 묘하다는 뜻이다.
음성 박아무개 운봉 황산대첩비와 관련된 조상 ‘박광옥 현감’ 자랑을 하기에 그 문집을 좀 보자 하니 겨우 표지만 보여주어 성미 특이함을 알았는데, 이와는 반대로 전주이씨 목사공종중 이종규 부회장은 전화로 불러내어 밥 사고 『우루재창화편(상):愚陋齋唱和編(上)』을 내밀며 ‘갖다 읽으라’는 게 아닌가?
이 분은 선경(仙境)에서 온 선인 같아 용진 소씨 집 안내도 했다.
글이 짧아 대충 아는 대로만 소개한다. △책 1912년에 나왔고 △펴낸이는 전주유씨 병양(秉養)이며 △오늘날 삼례읍 구와리(前昌德面柳里)에 살았다. △표지 포함 약 120면 시집으로 시도 시이지만 유병양 씨 자호(自號) ‘우루재(愚陋齋)’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흥미롭다. △우(愚)는 ‘어리석음’이요, 루(陋)는 ‘더럽다’이다. △어리석고 더러운 집[齋:재]이란 뜻이다. △자서(自序)를 포함 서문만도 38편 이렇게 괴이한 책 처음 봤다. 『완주 기네스』에 들 책이다.
왜 서문이 많은가? “당신은 절대 ‘어리석고, 더러운 사람(집)’이 아니야! 아니야! 그 반대야!” 이런 논술들이다.
과거제도가 폐지되고 세상 학도들이 실의에 빠져 공부를 놓으니 이를 안타깝게 여긴 유병양 씨가 자력자비로 만경강 둔치에서 전국백일장을 열었고 그 때 뽑은 시를 모아 펼쳐낸 책이 바로 『우루재창화편』이다.
서문에서 고산초교 전신 봉양(鳳陽)학교 설립자 김낙구(金洛龜:1862년생) 전 순천군수 다른 호 ‘기농(奇儂)’도 보았다.
좋은 말엔 좋은 얘기가 따르기 마련, 노나라 전금(展禽)이 ‘유하(柳下)’땅에 살다가 성을 ‘유(柳)’로 했고, 고흥유씨도 마찬가지라는데 여기 삼례[前 五百條面] 유리(柳里)는 유씨가 많이 살아 마을 이름이 ‘유리’란다.
우루재 유병양 선생 자손 어디서 무엇 하나. 이종규 씨가 건네준 책에서 ‘전주군 창덕면 유리’를 만났고, 전 판서 유하(遊霞) 김종한(金宗漢)은 ‘…몸 추스림 바른 길 돋는 달 같아, 세상에 끼친 고풍 더러울 게 없네. 이 나라 삼천리강산, 유리에서 홀로 청청함을 지켜가네 [“…수신정로여개월(脩身正路如開月)/유세고풍불염진(遺世高風不染塵)/ 동국삼천강토내(東國三千疆土內)/ 청청리유독장춘(靑靑里柳獨長春)”] 이렇게 읊었다.
광주 기경섭은 삼례 이날 풍광을 ‘…좋은 봄 어서 이 세상에 와야 하는 디[태평연월복왕춘(此太平煙月復王春)] 망국을 보며 광복 오기를 은근히 노래하였다. 학자에게는 고전이 곧 햇빛이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