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일본 연호 ‘헤이세이(平成:평성)’ 몰라서 불편할 게 없고 잘 안다고 장한 일도 아니다. 다만 지금 일왕(日王) 나이와 비슷한 한국인은 쇼오우와(昭和:소화)-다이쇼(大正:대정)-메이지(明治:명치)까지 4대를 어느 정도 알 것이다. 식자들이 터놓고 “당신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때문에 우리 국민 고생했으며 위안부 비통한 문제 그럭저럭 끝날 수 없지 않소?” 이렇게 물으면 “그렇소이다” 이 대답이 당연하다. 한국 침략만 없었더라면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이등박문) 죽을 일이 없고,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샹하이(上海:상해) 홍거우(虹口:홍구)공원에서 도시락 폭탄을 왜 터뜨렸겠나. 가와바타 시다쓰(河端貞次:하단정차/상해거류민단장 즉사), 히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백천의칙/중상 후송 뒤 사망), 시케미쓰 마모루(重光癸:중광계/일본공사 한쪽 다리 절단), 노무라 요시사부로(野村吉三郞:야촌길삼랑/해군대장 실명), 우에다 겐키치(植田謙吉:식전겸길/9사단장 중상), 무라이(村井:촌정/상해총영사), 호노(方野:방야/거류민단 서기장) 외 일본 남녀 10여명이 박살났다. (1988 새물결) 지금 국왕 연호 헤이세이(平成)는 중국 고전 『사기(史記)』 오제본기와 『서경(書經)』대우모에서 “나라 안팎도 천지에도 평화가 달성한다”는 뜻 곧 ‘내평외성(內平外成)‘, ‘지평천성(地平天成)’ 구절에서 땄다고 했으니 세상만사 이대로만 처신하면 될 일이지 왜 시끄럽게 하는가. 김영상 전 대통령 업적 가운데 잊을 수 없는 일은 조선총독부 건물을 들어낸 과단성과 하나회 해산이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6년간 일본에 붙들려간 노동자가 137만인, 국내 강제노역자 450만, 군인 군속 소위 정신대(挺身隊) 즉 위안부(慰安婦)로 끌려간 사람이 37만 명이었다. 더욱 괘씸한 자는 1953년 한일회담 일본측 대표 구보타 간이치로(久保田貫一郞:구보전관일랑)는 “한일평화조약이 체결되기 전에 한국이 독립된 건 국제법 위반이다” 떠벌리더니 한 술 더 떠 조선통치는 ‘시혜(施惠)’라는 망언을 작작했다(이재근 글). 왜 지금 이런 말이 나와야하나? 아베 신조(安倍晉三:ぁべしんぜう) 때문이다. 1933년생 일왕과 같은 또래 한국 영감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경로당 노인들 정부 복지시혜로 기름(전기)때주는 따뜻한 방안에서 실수(失手), 실족(失足), 실심(失心), 실신(失身), 실언(失言)하지 말며 알곡과 쭉정이를 제대로 가려낼 줄 알아야 진실한 어른이다. 모르면 당하고 당하면 억울하다. 위기 속에서 속없이 허허허 하지 말고 미·일·중·소·북의 꾀와 계략에 걸려들지 않아야 온전한 나라이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
최종편집: 2025-06-24 09:5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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