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천과 나란히 북쪽으로 내려뻗은 산줄기가 화산공원이고 산마루에 완덕정이 있다. 8각기둥 여덟 개이니 ‘8각정’이나 높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시·군 마다 흔한 정자 현판은 귀한 편인데 ‘완덕정(完德亭)’은 한자 편액이 걸렸고 조각자의 이름까지 완연하여 살아있는 정자라는 표현이 맞다.
정자 안팎이 깨끗하며 책꽂이에는 볼만한 여러 권의 책이 있고, 특히 일간지(전북일보, 전북도민일보)를 갖춰놓았다.
누가 그랬을까? 김동성이란 고무인(印)이 찍혀 있다. 기둥 뒤엔 1990년대 활동했던 전주시의회 의원의 관련 신문 기사가 붙어있다. 대단한 정성이다.
대개 의원들(국회의원 포함)은 임기 끝나 물러나면 어디서 뭘 하나 보이지 않는데 김 전 의원은 오가는 사람을 아끼는 선덕군자이다.
전북대총동창회 이사/ 전주시의정회 부회장/ 행정동우회전주시지회 부회장/ 전주시중앙동발전협의회 고문/ 전주중앙동 태평경로회장/ 의성김씨 전북종친회 고문이므로 명예관리도 잘하는 편이다. 정자에 걸려있는 시계와 거울 가져가지 않는 시민의 마음씨가 전주 체면을 드높인다.
나무 사이로 한참 걸어가자 화산정(華山亭)이 기다리고, 낙엽 깔린 내리막 큰 길 가 선충사(宣忠祠)에 이르면 장의문(杖義門)·자명문(自明門)이 우뚝하며, 모퉁이 노송 아래엔 송시열 글, 송준길 글씨의 ‘화산서원(華山書院) 묘정비(廟庭碑)’는 보호각(保護閣)을 세워 전주 완주 민도를 표 나게 한다.
같은 시기, 같은 크기, 같은 사람의 글과 글씨건만 비봉면 백도·봉산 노천 비석은 비바람에 시달려 그 수명이 다를 것이다.
화단에서 매란국죽(梅蘭菊竹) 서열 두지 않는다는데 묘정비와 묘비를 따진다면 옹졸한 생각 아닐까.
근래 문화 인식의 변화로 전주 한옥단지가 유명하다. 완산에서 가장 오래된 정자는 고려 말 이문정이 세운 마전(馬田) ‘문학대(文學臺)’이고, 팔복동 ‘팔과정(八科亭)’ 역시 오묘한 이야기를 전한다.
근영여고는 당국자와 상의 공원 안의 학교 설립자 묘역 출입이 더 편하도록 손을 보는 게 도리이다.
자동차와 큰 길, 터널이 변화를 몰고 와 이쪽저쪽 넘어 다니던 고개는 거의 발길이 끊겼다.
진북사는 주변 땅을 사 경내를 넓히면 더욱 돋보일 터인데 불자들의 생각은 어떤지.
열렬한 시민단체는 모 재벌회사에서 세우려던 아파트 건설 계획을 막아내어 화산공원이 제구실을 한다.
곳곳에 마련해 놓은 쉴 자리와 운동시설은 더 많은 사람을 기다린다.
화산공원은 완산칠봉, 남고산, 고덕산으로 이어져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니 기린봉 모악산이 이웃이나 맥 따라 만나려면 하루에 못다 가는 거리이다. 완덕정에서 덕담 나눌 친구를 기다려 보자.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