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괴산출신 김종호씨 서울법대를 나왔고 국회의원, 내무부장관, 성균관부관장을 지냈으며 1986년 『당태종 정관정요』번역본을 냈으니 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글에 ▲…신하들이 ‘피서 궁전’을 짓자하니 태종은 “내게는 기병(氣病)이 있어 습한 곳이 좋지도 않지만 집질 경비 많이 들을 것이다. …백성의 부모라는 천자가 취할 도리라 할 수 있겠는가?” 공경들이 두 번 세 번 강력하게 청했으나 끝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태종이 가장 귀여워하는 딸 장락공주 혼인준비를 하면서 자매[長公主] 때보다 갑절로 하라 분부하였다. 이를 안 위징(魏徵)이 “정으로야 공주가 더 할 수 있지만 예로부터 정해진 예법을 넘어서서는 아니 됩니다. 부디 폐하께선 이 점을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에 태종은 ‘참 좋은 말을 해줬다.’며 칭찬하고 황후에게 말하니, 황후 감탄하며 “위징이 아뢴 말 참으로 공평합니다. …천자와 부부인 저 정이 두텁습니다만 …폐하의 ‘안색’을 살피면서 …위엄을 손상하는 말은 도저히 아뢸 수 없었습니다. …신하인 경우는 부부처럼 친밀할 수 없고 예절에도 간격이 있습니다. …‘충언’을 받아들이면 세상은 바로 잡아지고, ‘충언’을 막으면 정치가 어지러워집니다. …‘충언’을 잘 처리하시면 만민에게 큰 ‘행복’이 됩니다.” 이렇게 말하고 사자를 시켜 비단 500필을 위징 집에 보내 포상했다(121면). ▲고려 최항(崔沆)은 대장경을 새기고, 강화도에 성을 쌓으며, 고려 태조 묘 이장을 맡아 했는데 고종이 표창하려하자 간곡하게 사절하였다. 신하, 천자, 황후, 왕, 백성 모두가 좋았다. ▲박서 장군과 예랑이 만나 그 사이에서 불옥(佛玉)을 낳았고, 불옥은 청학동에서 20년 공부했다. 하루는 네 아들이 올라왔는데 넷째가 인일(仁一), 인일은 아버지 말에 따라 청학동에서 배웠다. 도인은 인일에게 ‘벙어리 채 여인’과 혼인케 하여 낳은 아들이 바로 무학(無鶴)이다(정감록 중편 268면). 사람마다 세상을 알고 말을 했으며, 말을 따르자 모두 성공했다. ▲우의정 김수항의 열 살 난 아들이 죽자 충청병사 박진한(朴振翰)이 무명베를 보내니 김수항 ‘이게 아첨이냐?’ ‘아니면 대신을 시험하는 것이냐?’ 꾸짖고 의법조치했다(1988. 6. 3. 이규태 코너). ▲고려 김부식 아들 내시 김돈중은 촛불로 정중부 장군 수염을 태웠으나 이를 앙다물고 몸을 떨며 참았다. 그 후 18년이 흘러 문관이 무관 뺨을 치자 그동안 참았던 정중부는 칼을 빼 목을 내려쳤다. 이것이 전략에 능통한 장군의 기지였다(정감록비결 214면). 시끄러운 세상이기에 여기저기 찾아 해보는 말인데, 주변의 대화 불통자는 누굴까? 연말 젓가락장단에 맞춰 노래하는 흥, 사람이 보고 싶구나.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
최종편집: 2025-06-24 10: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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